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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270
한자 柳永詢
영어공식명칭 Ryu Youngsoon
이칭/별칭 순지(詢之),졸암(拙庵),북천(北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2년연표보기 - 류영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9년 - 류영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87년 - 류영순 동지사로 명나라 사행
활동 시기/일시 1595년 - 류영순 황해도관찰사 재임 중 파직
활동 시기/일시 1596년 - 류영순 병조참지로 복직
활동 시기/일시 1602년 - 류영순 좌승지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06년 - 류영순 경상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07년 - 류영순 경상도관찰사 이임
몰년 시기/일시 1630년연표보기 - 류영순 사망
출생지 한성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전주(全州)
대표 관직 경상도관찰차|한성부윤|호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류영순(柳永詢)[1552~163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순지(詢之), 호는 졸암(拙庵) 또는 북천(北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류헌(柳軒)이고, 할아버지는 류세구(柳世龜)이다. 아버지는 백천군수를 지낸 류연(柳埏)이고, 어머니는 신효손(申孝孫)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형은 류영겸(柳永謙)·류영근(柳永謹)이다.

[활동 사항]

류영순은 1552년(명종 7)에 한성[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579년(선조 12)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587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사성·장령·집의·동부승지·우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류영순은 1595년 황해도관찰사로 재임 중 파직되었다가 1596년 병조참지로 복귀하여 해서(海西)와 관서(關西) 사이의 관문인 평산산성(平山山城)의 수축을 청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아버지와 형이 왜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김시헌(金時獻)·송순(宋詢) 등과 함께 군량과 무기 등을 준비하고 장정 700명을 모아 한성 수성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598년에 다시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고, 1601년 성주목사를 거쳐 1602년 좌승지가 되었다. 1604년에는 정평부사(定平府使)가 되어 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학동들을 가르쳤다.

류영순은 1606년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경상감영징청각(澄淸閣)과 응향침(凝香寢)을 건립하였다.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927]의 사당[표충사(表忠祠)]을 건립하는 데 기여하였고,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강학소인 선사재(仙査齋)를 방문하여 강학을 독려하는 등 대구부의 유학 진흥에도 힘썼다. 이후 동지중추부사·한성부윤에 이어서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630년(인조 8)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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