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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245
한자 權盼
영어공식명칭 Gwon Ban
이칭/별칭 중명(仲明),폐호(閉戶),심원당(心遠堂),길천군(吉川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4년연표보기 - 권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4년 - 권반 군자감참봉 역임
활동 시기/일시 1595년 - 권반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4년 - 권반 안주목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12년 - 권반 균전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13년 5월 - 권반 경상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14년 - 권반 경상도관찰사 이임
몰년 시기/일시 1631년연표보기 - 권반 사망
부임|활동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묘소|단소 권반 묘소 - 인천광역시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 경상도관찰사|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가계]

권반(權盼)[1564~1631]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명(仲明), 호는 폐호(閉戶) 또는 심원당(心遠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옥천군수를 지낸 권영(權詠)이고, 할아버지는 권이(權頤)이다. 아버지는 권화(權和)이며, 어머니는 윤건(尹健)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부인은 윤국형(尹國馨)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권반은 1564년(명종 19)에 태어났다. 장인인 윤국형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94년(선조 27) 군자감참봉이 되었다. 1595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04년(선조 37) 안주목사(安州牧使)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선조의 치하를 받았다. 이후 필선·응교·집의를 거쳐 1612년(광해군 4) 균전사(均田使)로 대동법의 토대를 닦았다.

권반은 1613년 5월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1614년까지 재임하였다. 재임 기간 동안 빈민을 구휼하고 부역을 공평케 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이를 계기로 선대의 봉호인 길천군(吉川君)에 습봉되었다. 1614년 2월 28일 연경서원이황의 위패를 봉안한 뒤 관찰사로서 배알하는 등 대구 지역의 유학 진흥에도 기여하였다.

권반은 그 뒤 순검사(巡檢使)로서 해안 방어에 힘썼으며, 나주목사와 강화부사를 역임하였다. 1626년(인조 4)에는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해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경기도에서 시행한 대동선혜(大同宣惠)의 정책을 본받아 전세(田稅)와 부역을 공평하게 부과하려고 하였으나 성사시키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대동법으로 계승되었다. 1631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권반은 오세창(吳世昌)이 지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조선 중엽의 대표적인 서화가로 수록될 정도로 서화에 능하였다.

[묘소]

『창석집(蒼石集)』에 실린 권반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권반의 묘소는 인천광역시 도장산(道章山)에 있다고 하지만 현재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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