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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078
한자 鶴山齋
영어공식명칭 Haksanja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로14길 103[지산동 358]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학산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0년 - 학산재 기와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7년 - 학산재 중수
현 소재지 학산재 -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로14길 103[지산동 358]지도보기
성격 서당형 정자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와가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중화양씨 지촌 문중
관리자 중화양씨 지촌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양달화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건물.

[개설]

학산재(鶴山齋)지촌(池村)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정자이다. 양달화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문장과 덕행으로 향리에서 명망이 높았다.

학산재는 원래 생전에 양달화가 강학하던 학산서당(鶴山書堂)이었다. 이후 양달화의 학덕을 기리며 문중의 자제들을 교육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는데, 서당이 너무 비좁아서 후손들이 공론하여 1890년(고종 27)에 학산재로 중건하였다.

학산재에는 많은 편액과 시문이 걸려 있다. 경도재(景陶齋) 우성규(禹成圭)가 상량문을 짓고 기문을 썼으며, 고종 때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이 정면 현판 글씨를 썼다. 당우 좌우에는 후손인 양재호(楊在湖)가 쓴 ‘제광정(霽光亭)’ 현판과 정학교(丁鶴喬)가 쓴 ‘학산재’ 현판이 걸려 있다. 당우 안쪽에는 학남(鶴南) 양홍일(楊泓一)이 쓴 ‘학산재’ 현판이 걸려 있으며, 대구의 유명한 서예가인 팔하(八下) 서석지(徐錫止)가 쓴 ‘혜재(蕙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혜재’는 양달화의 후손 양재호의 호이다. 대청마루의 상부 둘레에는 양달화의 시와 양달화의 시에 차운한 많은 시들이 걸려 있다. 정면 기둥에는 여섯 개의 주련이 있는데 서병오가 쓴 것이다.

[위치]

학산재수성구 지산동 358에 있다.

[변천]

양달화의 후손들이 1890년 학산서당을 학산재로 중건하였다. 1960년 기와를 보수하였으며, 1997년에 중수하였다.

[형태]

학산재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형태이다. 중앙에 대청마루를 놓고 양쪽으로 방을 둔 전형적인 정자식 한옥 건물이다. 소박한 3문으로 된 솟을대문에 흙으로 담장을 둘렀고, 대문 안 왼쪽 담장 맨 끝에 수령 3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는 큰 은행나무가 있다. 건물 사방을 둘러 쪽마루를 설치한 것도 이채롭다.

[현황]

학산재는 현재 중화양씨 지산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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