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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11
한자 獨茂齋
영어공식명칭 Dongmuja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만촌동 188-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68년 4월 - 독무재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188-1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6월 15일연표보기 - 독무재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6월 29일 - 독무재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독무재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만촌동 188-1]지도보기
원소재지 독무재 -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목조 와가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관리자 달성하씨 독무재 종종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하시찬을 추모하는 재실.

[개설]

독무재(獨茂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하시찬은 1750년(영조 25)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나 당대의 석학이던 김경호(金鏡湖)·송성담(宋性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독무암루(獨茂岩樓)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고, 『팔례절요(八禮節要)』 2권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하시찬이 사망한 뒤 제자들과 유림이 나서서 독무암루가 있던 자리에 건립한 재실이 독무재이다. 1968년 4월 도로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독무재를 옮겼고, 독무재 서남쪽에 별도의 담장을 두고 사당인 경덕사(景德祠)와 『팔례절요』와 『열암문집(悅菴文集)』 판각이 보관된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위치]

독무재수성구 만촌동 188-1에 있다.

[변천]

독무재는 지금의 효목동 독무암루가 있던 자리에 건립된 재실이었으나, 대구 3차 순환선 도로 건설로 인하여 1968년 4월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형태]

독무재는 정면 6칸, 측면 1.5칸의 시멘트 기단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운 홑처마 맞배지붕 양식의 목조 기와집이다. 박공 양측에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2칸의 온돌방을 두고 건물 앞면에는 폭 반 칸의 툇간을 두었다.

[현황]

독무재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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