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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79
한자 大邱 八達洞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산8|팔달동 산9-1|작원길 25[팔달동 145]|노곡동 107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12월 7일~1993년 2월 3일 - 대구 팔달동 유적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8월 16일~1997년 5월 31일 - 대구 팔달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소재지 대구 팔달동 유적 -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산8|산9-1|작원길 25[팔달동 145지도보기]|노곡동 107지도보기 일대
성격 고분군
양식 나무널무덤[목관묘]|독무덤[옹관묘]|나무덧널무덤[목곽묘]|돌덧널무덤[석곽묘]|돌방무덤[석실묘]
크기(높이,지름) 60~200㎝[나무널무덤 깊이]|30~60㎝[널무덤 깊이]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에 있는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분군.

[개설]

대구 팔달동 유적(大邱八達洞遺跡)은 1980년 예비군 참호를 파면서 존재가 확인되었다. 당시 발견된 유구는 나무덧널무덤[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이고,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쇠검 등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팔달동 유적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산8·산9-1·145번지와 노곡동 107번지 일대에 있다. 대구 시내에서 팔달교를 건너 안동으로 가는 국도4호선의 오른쪽에 있는 대백인터빌아파트를 포함한 해발 30~78m의 얕은 구릉에 있다. 구릉은 함지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가운데 가장 말단부에 해당하며, 유적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져 금호강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2년 12월 7일부터 1993년 2월 3일까지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대구 팔달동 유적[팔달동 산9-1번지와 노곡동 107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널무덤[토광묘] 17기,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3기,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 1기 등이 조사되었다. 1996년 8월 16일부터 1997년 5월 31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대구 팔달동 유적[팔달동 145번지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19동, 구덩이[수혈] 4기, 원삼국시대의 나무널무덤[목관묘] 103기, 독무덤[옹관묘] 139기, 구덩이[수혈] 2기, 야외노지(野外爐址) 1기, 삼국시대 나무덧널무덤[목곽묘] 22기, 돌덧널무덤[석곽묘] 31기, 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석실묘] 1기, 뼈단지[골호(骨壺)] 1기, 조선시대 널무덤 146기 등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유구가 조사되었다.

[형태]

대구 팔달동 유적에서 조사된 유구는 원삼국시대 나무널무덤, 독무덤, 삼국시대 나무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이다. 나무널무덤은 나무널[목관]의 사용 유무에 따라 널무덤과 나무널무덤로 구분한다. 나무널의 형태와 적석(積石)[널을 안치하고 난 후 구덩이에 돌을 채우거나 혹은 구덩이를 덮는 나무 뚜껑 위에 돌을 올리는 것]의 유무에 따라 판재식·판재식적석·통나무관·통나무관적석 나무널무덤으로 구분된다. 나무널무덤의 깊이는 60~200㎝ 정도로 깊은 편이지만, 널무덤은 30~60㎝ 정도로 차이가 있다. 나무널무덤은 깊이가 깊어서 2~3단으로 단을 지게 판 경우도 종종 확인된다. 45호와 57호 나무널무덤은 영남 지역에서 판상철부가 처음으로 부장된 유구로 논의되고 있다. 독무덤은 삼각형덧띠항아리[삼각형점토대옹] 등의 무늬 없는 토기로 구성된 합구식(合口式)[2개의 토기를 맞붙여 축조한 형식]이 대부분이며 일부 와질토기(瓦質土器)[토기의 경도가 마치 기와와 유사함]로 구성된 것도 있다. 나무덧널무덤은 모두 단곽식이며, 사면부 위쪽에서 반원형의 주구(周溝)가 확인되기도 한다. 유물은 대부분 나무덧널 위에 토도류 등을 부장하였으며, 한쪽 단벽 쪽에 별도의 부장 공간을 둔 경우도 확인된다. 돌덧널무덤의 봉토는 모두 유실되었고, 일부 사면 위쪽에 주구가 확인되기도 한다. 돌덧널무덤은 단곽식과 주부곽식이 확인되며, 유물은 무덤의 바닥과 한쪽 또는 양쪽 단벽 쪽에 부장하였다.

[출토 유물]

대구 팔달동 유적의 나무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와 와질토기가 출토된다. 민무늬토기는 아가리 부분에 점토띠가 돌려진 옹[점토대옹], 굽다리접시[고배], 항아리류 등이며, 와질토기는 짧은목항아리[단경호], 쇠뿔손잡이단지[우각형파수부호], 두귀달린항아리[양이부호] 등이다. 철기류는 쇠도끼, 낫, 창, 검, 화살촉, 끌, 손칼 등, 청동기는 세형동검, 칼자루끝장식[검파두식], 청동창, 칼집부속구 등, 장신구는 유리제옥, 천하석제옥, 흙으로 만든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 보아 기원전 2세기부터 2세기가 중심 연대로 추정된다. 목곽묘에서는 짧은목항아리, 굽다리항아리, 두귀달린항아리, 화로형토기, 고리자루칼[환두도], 화살촉, 쇠도끼, 미늘쇠[유자이기], 손칼, 목걸이 등이 출토되었고, 출토 유물로 보아 3세기 중후반에서 4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돌덧널무덤의 출토 유물은 뚜껑달린굽접시, 굽다리접시, 짧은목항아리, 굽다리긴목항아리, 가락바퀴, 손칼, 화살촉, 쇠종방울, 도끼, 귀걸이 등이며, 돌덧널무덤은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까지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황]

대구 팔달동 유적 내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팔달동 145번지 일대는 대백인터빌아파트가 지어져 유적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사가 되지 않은 북쪽 및 북동쪽 사면은 현재 산지로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원삼국시대 나무널무덤이 단일 유적으로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로 조사된 대구 팔달동 유적은 대구 지역뿐만 아니라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무덤 유적이다. 유적에서 조사된 나무널무덤과 나무덧널무덤은 영남 지역의 초기 철기시대 및 원삼국시대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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