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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15
한자 大邱 上洞 遺跡二
영어공식명칭 Daegu Sang-dong Yujeok2|Archaeological Site 2 in Sang-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화로5길 40[상동 89-2]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3월 8일~4월 6일 - 대구 상동 유적2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1차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12월 26일~2002년 7월 13일 - 대구 상동 유적2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2차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상동 유적2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89-2 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발굴 조사된 생활 유적.

[개설]

대구 상동 유적2대구수성초등학교의 현대화 재개발 시범학교 건립 사업을 앞두고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3월 8일부터 2001년 4월 6일까지 1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2001년 12월 26일부터 2002년 7월 13일까지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는 집터 20기, 수혈유구(竪穴遺構) 4기, 구상유구(溝狀遺構) 2기, 기둥구멍 2개가 확인되었고,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는 집터 9기, 수혈유구 1기, 우물 2기가 확인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집터 1기, 수혈유구 63기, 화덕자리 4기, 적심(積心), 기둥구멍군 등이 확인되었다. 그 외에도 근대로 추정되는 우물 4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토도류 353점, 옥석류 23점, 금속류 26점 등 총 402점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상동 유적2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89-2번지 일대에 있다. 수성구 상동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삼성산, 봉화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신천 중하류 지역 동안의 충적지에 해당한다. 신천 중하류 지역 동안과 서안의 충적지에는 선사시대 이래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어 ‘신천변 유적’으로 통칭되고 있다. 상동 전 지역이 신천변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데, 대구 상동 유적2의 북쪽으로는 상동 지석묘2와 상동 지석묘3이, 남서쪽으로 상동 162-12 유적이 잇닿아 있다.

[형태]

대구 상동 유적2의 청동기시대 집터는 형태 파악이 어려운 4기를 제외하면 직사각형 집터 3기, 말각방형(抹角方形)[네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네모 형태] 집터 1기, 사각형 집터 11기로 구분된다. 직사각형 주거지 중 14호 집터는 돌을 두른 화덕자리가 확인되었고, 사각형 주거지 중 1호·15호·16호·17호·19호 집터에서 구덩식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집터 바닥면은 기반층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2호·6호·7호·11호 집터에서는 점토 다짐을 하여 사용하였다. 집터에서 출토되는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로 구분되며, 형태에 따라 항아리 종류와 바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바리는 깊은 바리와 얕은 바리가 있으며, 깊은 바리는 꼭지가 부착된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깊은 바리에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토기, 구멍 짧은 빗금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청동기시대 전기의 특징적인 문양 요소이다. 석기는 출토 비중이 비교적 낮은 편인데, 돌화살촉, 반달 모양 돌칼, 돌도끼, 돌끌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의 집터는 형태를 알 수 없는 2기를 제외하면 직사각형 3기, 사각형 3기, 역사다리형 3기로 구분된다. 일부 집터에서는 난방시설인 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6호 집터에서는 외줄 구들, 7호 집터에서는 ‘ㄱ’ 자형 구들, 8호 집터에서는 ‘티(T)’ 자형 구들과 지각(支脚), 9호 집터에서는 구들 일부가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는 굽다리접시, 뚜껑, 긴목항아리, 항아리, 무른 항아리, 무른바리[軟質鉢], 쇠화살촉, 쇠낫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구는 수혈유구가 대부분인데, 명확하게 성격을 밝히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2호·12호·15호와 같이 구들 시설이나 화덕 시설, 기둥구멍 등이 있는 경우 주거용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호·13호·27호·28호·29호와 같이, 평면 형태가 부정형이고 바닥면이 고르지 못하며 규모가 일정하지 않으며 내부에 자기 조각, 토기 조각, 강돌과 깬돌이 무질서하게 채워진 수혈은 폐기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호·7호·48호 수혈과 같이 평면 형태가 원형이고 단면이 통형인 경우, 저수용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현황]

대구 상동 유적2 지역은 발굴 조사 완료 후 대구수성초등학교가 새로이 조성되었다. 대구 상동 유적2 주변은 이미 도시화되어 있는데, 청동기시대 이후의 생활 유적이 매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의의와 평가]

대구 상동 유적2는 북쪽에 맞닿은 대구 상동 우방아파트 건립 부지 내 유적과 연결되는 유적이다. 두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생활 유적이 이어져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신천변 동안의 충적지가 인간생활의 최적지로서 계속 이용되어 왔음을 알려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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