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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35
한자 嶺南日報
영어공식명칭 The Yeongnamilb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영남일보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5년 10월 11일 - 『영남일보』 창간호 발행
현 소재지 영남일보 -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로 441[신천동 111]지도보기
성격 신문사
설립자 한응렬 등 13명
홈페이지 https://www.yeongnam.com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 있는 신문사.

[개설]

영남일보는 1945년 대구에서 민족지를 표방하며 설립된 민간 신문사이다.

[설립 목적]

『영남일보』는 창간사를 통하여 “건국 성업의 초석이 되어 당파와 알력을 초월하고 삼천만 동포에게 진실한 보도 전사가 될” 목적으로 창간한다고 밝혔다. 이후 영남일보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받들고 내 고장 발전의 향도로서 세계 속의 한국인을 지향한다”라는 사시를 통하여 설립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영남일보는 1945년 한응렬(韓應烈) 등 13명의 동인제로 설립된 후 1945년 10월 11일 『영남일보』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영남일보』는 광복 이후 대구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우리말 신문이다. 창간호는 9단 60행 내외의 타블로이드판 2면으로 발행되었다. 영남일보는 1945년 12월 1일자 지면을 통하여 동인제를 해소한다고 공식 발표하고, 김의균(金宜均)을 초대 사장으로 영입하였다. 1945년 12월 22일 김의균 초대 사장이 군정청(軍政廳)의 경상북도지사 대리로 부임하자, 영남일보는 편집국장 김영보(金泳輔)를 제2대 사장으로 선임하였다. 영남일보는 1946년 5월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급속히 사세(社勢)를 확대하였다. 영남일보는 1946년 3월 1일 주간 『영남경제신문』을 창간하고, 1946년 3월 4일 일요일에 발행하여 『영남일보』 구독자에게 무료로 배부하였다. 하지만 『영남경제신문』은 5개월 만에 폐간되었다. 영남일보는 1946년 9월 2일 2면을 「동해 특집호」로 발간한 이후, 1948년 3월 1일 2면을 「영남일보 동해판」이라는 제호로 발간하였다.

『영남일보』는 1957년 1월 29일부터 매일 4면을 발행하였다. 이어 1959년 6월 29일부터는 조간 2면, 석간 4면으로 발행되었다. 하지만 1962년 6월 강제로 조간 6면으로 발행되었고, 1966년 6월 1일 다시 석간으로 발행되었다. 영남일보는 1980년 말 언론 통폐합 조치로 매일신문사에 합병되었다. 영남일보는 1980년 11월 25일자 지령 11499호로 「5백만 경북도민 여러분과 고별합니다」라는 고별사를 남기고 1980년 12월 1일부터 『대구매일신문(大邱每日新聞)』으로 발행되었다.

『영남일보』는 1989년 4월 매일신문사에서 분리하여 지령 11,500호를 발행하였다. 복간은 32면의 특집호로 발행되었다. 1면에는 「민주·통일·바른 향토지」라는 제목으로 복간사를 실었다. 『영남일보』는 1995년 10월 11일 지령 13485로 창간 50주년을 맞아 본지 32면, 별지 12면, 도합 44면의 기념호를 발행하였다.

[현황]

영남일보는 2005년 4월 제3자 인수로 2000년 10월부터 시작된 법정 관리에 벗어나 경영이 정상화되었고, 2005년 8월 조간으로 전환하였다. 2017년 대구 발행 부수는 5만 2312부, 경상북도 발행 부수는 2만 2146부였다. 영남일보는 자매지로 『위클리포유』, 『에듀포유』 등도 발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남일보는 1945년 10월 순수 민간지를 발행하며 대구와 한국 사회의 변동 속에서 언론의 존엄과 지역 발전의 향도로서 충실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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