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배달청년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474
한자 倍達靑年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6년 2월 16일연표보기 - 배달청년단 결성
최초 설립지 배달청년단 - 대구공회당[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지도보기
성격 청년단체

[정의]

1947년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설립 목적]

1947년 2월 16일 대구공회당[북구 칠성동]에서 우익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배달청년단(倍達靑年團)은 대구 지역 우익 진영의 강화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우익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배달청년단은 우익 진영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결성식 직후에는 우국청년웅변대회(憂國靑年雄辯大會)를 개최하였다. 배달청년단이 결성되던 무렵에는 좌익과 우익의 갈등이 깊어지던 때였다. 이때 미군정이 경성대학의 3개 학부와 서울에 있는 9개의 관립 학교를 통폐합하여 종합대학교를 만든다는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약칭 국대안]을 발표하자 ‘국대안 파동(國大案波動)’이 일어났다. 대구에서도 국대안반대대구학생공투위가 결성되는 등 국대안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국대안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이 대구사범대학, 대구농업전문학교[현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대구공립상업중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경북중학교[현 경북고등학교], 대구농림중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계성중학교, 능인중학교, 대구중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등 대구 지역 각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국대안 반대운동은 해방공간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좌익과 우익의 대결로 흘러갔는데, 국대안 반대운동은 좌익 학생들이 주도하여 나갔다. 배달청년단은 대구에서 국대안 반대운동이 벌어졌을 때 우익 진영을 옹호하였다.

[의의와 평가]

배달청년단은 해방공간의 대구에서 좌익과 우익의 갈등이 깊어질 때 우익 진영 강화에 앞장섰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