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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연합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67
한자 大邱地區- 慶北地區 敎員勞動組合聯合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60년 5월 7일 - 대구초등학교교원노동조합 결성
설립 시기/일시 1960년 5월 7일 - 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 결성
설립 시기/일시 1960년 5월 22일 - 대한교원노동조합연합회 결성
설립 시기/일시 1960년 5월 30일 - 경북교원노동조합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61년 5월 16일 - 대구지구교원노동조합 5·16 군사구테타로 강제 해산
성격 교원 단체

[정의]

1960년 대구와 경북의 각급학교 교사들이 교원의 이익 옹호와 학원의 민주화를 위하여 만든 교원 노동조합.

[개설]

4·19혁명을 계기로 대구와 경북의 각 학급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 ‘학원의 자유’를 내세우며 대구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 대구지구초등학교교원노동조합, 경북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을 설립하여 교원의 지위 향상 및 신분 보장, 교원노조의 합법화 투쟁, 학원 부정부패 척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변천]

대구지구교원노동조합 운동은 경북지구의 설립에 이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950년 5월 22일 서울에서 전국적 교수노동조합, 중등교원노동조합, 초등교원노동조합의 결성에 이어 대한교원노동조합연합회가 창립되었다. 대구지구교원노동조합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불법으로 규정되어 해체되고, 탄압을 받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60년 5월 7일 대구에서 대구초등학교교원노동조합과 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이 각각 결성되었다. 강령은 학원의 자유와 독립, 교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의 향상, 교원의 신분 확립 등이었다. 교원노동조합의 결성과 동시에 기존 가입 단체인 대한교육연합회와 대구시중고등교육회에서 탈퇴하였다, 4·19혁명 시기 교원노동조합은 대구에서 최초로 결성되었다.

교원노동조합은 전국으로 파급되어 급기야 1960년 5월 22일 서울대학교에서 ‘민주학원 새 질서로’라는 구호와 ‘전국 교원 동지의 분기를 촉구한다’는 격문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한교원노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다. 교원노동조합연합회 결성 직전에 만들어진 전국 단위의 교수노동조합, 중등교원노동조합, 초등교원노동조합이 참여하였다. 경북교원노동조합은 1960년 5월 30일 대구에서 2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되었다.

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연합회는 교원노동조합의 합법화를 위한 투쟁에 집중하였다. 여기에는 교원의 지위 향상, 교원의 사회보장제도 확립, 교원의 신분 보장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교육자는 일반 노동자와 구별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교원노동조합의 합법화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에 교원노동조합은 집회, 시위, 단식 등의 방식을 통하여 합법화 투쟁을 계속하였다. 또한 대구 각급학교의 학생들도 교원들의 교원노동조합 합법화 투쟁을 지지하여, 동조 동성을 벌이고 지지 시위에 참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은 전국교원노동조합대표자대회를 유치하는 활동을 벌였으며, 1960년 7월 3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교원노동조합 전국대회의 준비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전국교원노동조합 전국대회에서는 ‘교원노조 해제 결사반대’가 중심 내용을 이루었다. 1961년 4월 9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교원노동조합대표자대회에서는 반공특별법과 데모규제법을 즉시 철회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이어 참가 교원들은 ‘이대악법반대’ 현수막을 앞세우고 대회 장소인 대구여자중학교[현 대구일중학교]를 나서 대구역 광장을 거쳐 대구경찰서 앞을 지나 교원노동조합 사무실까지 시위행진을 진행하였다.

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연합회는 1961년 3월 이후 이대악법반대경북공동투쟁위원회에 참여하여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대악법반대경북공동투쟁위원회는 1961년 3월 21일 대구역 광장에서 2만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제2차 이대악법반대시민궐기대회를 열었다. 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연합회는 1961년 3월 31일에는 대구와 경북 지역의 각종 정당·사회단체 및 학생 대표가 모여 결성한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노동단체학생단체공동투쟁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노동단체학생단체공동투쟁위원회는 1961년 4월 2일 대구역 광장에서 “장정권은 물러가라”, “이대악법은 살인이다. 죽음으로써 막아 내자”는 구호와 함께 열린 이대악법반대대구궐기대회 및 횃불데모에 참여하였다.

[현황]

대구의 교원노동조합운동을 이끌어 낸 대한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의 사무국장 이목, 대구지부 중등교원노동조합 부위원장 여학용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죄’로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투옥되는 탄압을 받았다. 이목은 1965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될 때까지 5년여를 복역하였다. 대한민국 법원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에 교원노동조합 관련자에 대한 재심을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이목은 2010년 4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연합회4·19혁명 이후 학원의 자유와 독립, 교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의 향상, 교원의 신분 확립 등을 강령으로 내건 교원노동조합운동을 전국적으로 촉발하였다. 그에 따라 전국 단위의 초등교원노동조합, 중등교원노동조합, 교수노동조합을 만들고, 대한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를 결성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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