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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인민위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07
한자 大邱市 人民委員會
영어공식명칭 Daegu Branch of the National People’s Congres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0월 16일연표보기 - 대구시 인민위원회 결성
성격 민간 자치기구

[정의]

1945년 대구광역시에서 설립된 민간 자치 기구.

[설립 목적]

대구시 인민위원회(大邱市人民委員會)와 같은 지역 인민위원회는 인민공화국의 지방적 체계이자 대중적 토대였으며, 치안 및 행정기능의 주체로서 노동·농민조합과 대중조직의 결성을 지원하는 동시에 토지문제와 일체의 식민지 체제의 해제를 주도할 수 있는 임무를 띠게 되었다.

[변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대구·경상북도 조직은 건국준비위원회를 해체하고 인민위원회로 조직 전환을 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시 인민위원회의 결성식은 1945년 10월 16일 대구공회당에서 대구 건국준비위원회 회원과 도내 각지에서 온 활동가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결성식에서는 중앙 인민위원회의 강령과 선언문, 시정 방침을 발표하고 참석자의 박수로 지지를 받았다. 대구시 인민위원회는 서영로를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부서로는 내정부와 조직부 등의 부서를 두었으나 그 밖의 조직에 대하여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채충식·장명우·김성곤 등이 대구 대표로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참석하였다.

대구시 인민위원회는 중앙 인민위원회의 정치노선을 준수하는 방식을 띠었고, 1945년 10월 말 무렵 조직부 회의에서 기층에서의 조직 강화와 민의 수렴에 기초한 효율적 시정을 전개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대구시 인민위원회의 기본 조직으로 ‘정(町)인민위원회’를 상정하였다. 정인민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위원으로 운영하고자 하였다. 대구시 인민위원회는 건국준비위원회 조직을 대체하여 광복 후 대구의 치안과 행정권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시 인민위원회는 대구 지역의 치안과 행정권을 장악하고자 하였으나 미군정이 대구에 진주하여 행정을 장악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중앙 인민위원회 노선에 따라 국가 건설을 위하여 활동하였고, 주요한 정치 위상을 갖기 위하여 힘을 기울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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