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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56
한자 國民保導聯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9년 6월 5일연표보기 - 국민보도연맹 조직
성격 관변단체

[정의]

1949년 6월 대구광역시에서 조직된 관변 단체.

[개설]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8년 12월 공포, 시행된 「국가보안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민보도연맹은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 성향이 있는 사람이나 좌익 단체에 가입하였던 사람들의 사상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와 함께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 통제를 목적으로 1949년 6월 5일 조직되었다. 국민보도연맹 가입의 주 대상자는 남한의 단독선거 반대 및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단체나 결사의 구성원이었던 자, 즉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사람 중 전향자들이었다.

[설립 목적]

국민보도연맹 창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교화 및 전향시켜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보도연맹 가입 대상자는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북조선노동당[북로당],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여성동맹, 민주학생연맹, 혁명단, 보건연맹, 인민당, 민중동맹, 인공당, 음악가동맹, 영화동맹, 과학자동맹,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출판노조, 근로인민당, 인민위원회, 신민당, 민주한독당 등 22개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국민보도연맹의 가입 과정에서 마을별 지도급 인사가 무조건 가입 도장을 찍게 하여 좌익과는 무관한 주민까지 가입하기도 하였고, 양식 배급과 여행 특혜를 준다고 속여 가입시키기도 하여 실제 적용 대상인 좌익 세력은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의 수는 10만 명 혹은 30만 명 정도의 엄청난 규모였다. 규모의 편차가 큰 것은 그만큼 통제가 미약하였고, 주먹구구로 국민보도연맹원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국민보도연맹의 지방 조직은 도 연맹, 시·군 연맹, 읍·면 지부로 구성된 가운데 대구에는 국민보도연맹의 시 단위 연맹이 구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대구의 국민보도연맹은 검찰청·경찰·국민보도연맹이 연합하여 이룬 ‘지도위원회’의 하위 기관처럼 가동되었다. 대구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은 경찰서와 대구형무소 등에 구금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가담하거나 부역 행위를 할 것을 우려하여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검속을 실시하였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인민군이 낙동강으로 빠르게 남하하자 군경에 의하여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집단학살되었다. 그중 대구에서는 대구형무소에 구금되었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가창과 경산 등지에서 군경과 우익 반공 단체에 의하여 집단학살되는 대구형무소 수감자 학살 사건이 벌어졌다.

[의의와 평가]

국민보도연맹은 법률이 아닌 정부 권력 기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구성된 조직이었다. 국민보도연맹원들은 남북분단 상황에서는 반공 선전 활동에 동원되다가 6·25전쟁 직후 국가권력과 우익 반공 단체에 의하여 집단학살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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