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경북노회 남녀교역자 종교보국간담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00
한자 慶北老會男女敎役者 宗敎報國懇談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1년 12월 8일연표보기~12월 9일연표보기 - 경북노회 남녀교역자 종교보국간담회
성격 사건|사고|친일 활동

[정의]

1941년 12월 8일 대구 서문교회에서 열린 기독교 교역자의 종교 간담회.

[개설]

일제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1941년 12월 8일 열린 경북노회 남녀교역자 종교보국간담회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선전을 펼친 자리였다.

[역사적 배경]

경북노회 남녀교역자 종교보국간담회는 일본의 미국에 대한 전쟁 선포는 ‘아시아 수호’,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고 선전전을 펼치기 위하여 열린 간담회였다.

[경과]

경북노회 남녀교역자 종교보국간담회는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1941년 12월 8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1941년 12월 8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12월 9일에는 대구신사 참배, 시국 강설회 2회, 장려회 2회, 시국 강연회가 진행되었다. 장려회는 신후식 목사와 김봉도 목사가 맡아 진행하였다. 시국 강설회의 강사는 경상북도 경찰부 간부와 대구경찰서 고등계 주임이 맡았다. 시국 강연회의 강사는 대구기독교연합회 회장 사토 신고로[佐藤新五郞]가 맡았다. 시국 강설회와 시국 강연회의 내용은 일본의 미국에 대한 전쟁 도발을 ‘아시아 수호’, ‘동양 평화’ 등으로 미화하고 정당화한 것이었다.

[의의와 평가]

경북노회 남녀교역자 종교보국간담회는 일제강점기 종교계에도 민족을 배반하였던 친일 인사가 많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