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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기념행사준비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76
한자 八·一五記念行事準備委員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정의]

1946년 대구에서 좌우 연합으로 구성된 8·15 광복 기념행사 준비 조직.

[개설]

8·15기념행사준비위원회(8·15記念行事準備委員會)는 1946년 대구에서 광복 후 첫 8·15 기념행사를 좌우 정치세력의 연합으로 치르기 위하여 구성된 일시적 조직이었다. 1946년 6월 대구에서는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과 같은 좌익정당과 한국민주당, 한국독립당과 같은 우익정당이 미군정과의 협의 아래 대구 지역 현안과 건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국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좌우합작을 이루고 있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8·15기념행사준비위원회대구공동위원회대구공동위원회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와 공동으로 구성되었다. 8·15기념행사준비위원회의 부서와 명단을 보면 대표에는 이상훈정운기, 총무에는 최문식과 박석홍, 기획에는 황태성과 최해청 등 좌우 연합으로 구성되었다. 그 밖에 재정, 선전, 연락, 동원, 시설, 연예, 체육 등의 부서를 두었는데, 마찬가지로 좌우 연합의 위원을 구성하였다.

8·15기념행사준비위원회 주최의 ‘8·15 해방 1주년 기념행사’는 1945년 8월 15일 오전 10시 자주독립 완수의 깃발 아래 대구역 광장에서 조선은행 대구지점까지 5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조선인민당최문식의 개회로 국기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진행되었다. 이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 김하정의 개회사, 조선공산당 이상훈과 경북도지사 김의균의 기념사, 엄성문의 결의문 낭독, 해론 대위의 축사, 김의균 도지사의 독립 만세 삼창이 있었다.

뒤이어 참석자들은 ‘충령탑 파괴식’을 위하여 대명동 운동장에 이르기까지 시가행진을 하였다. 시가행진은 참가 여학생이 든 태극기를 선두로 하여 초등학교까지 포함된 학생, 각종 단체, 일반 시민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가두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충령탑 파괴식은 경상북도 공보과장 박인세(朴寅世)의 개회로 시작되어 유족 대표 대구청년동맹 위원장 정문택(鄭文澤)[정운해의 아들]의 점화로 진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8·15기념행사준비위원회는 1946년 6월 대구에서 대구공동위원회가 구성된 이래로 좌우합작의 분위기가 고양된 가운데 좌우 연합으로 진행되어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더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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