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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국회 해산 요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73
한자 四代 國會 解散 要求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0년 5월연표보기 - 대구 지역 중고등학생들이 4대 국회 해산 요구
성격 사회운동|정치운동

[정의]

1960년 5월 대구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벌인 정치운동.

[역사적 배경]

4·19혁명 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이승만의 측근이었던 외무장관 허정의 과도정부가 1960년 4월 27일 수립되었다. 여당인 자유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제4대 국회는 해산되지 않았다. 국민들이 국회의 즉시 해산을 요구하였으나 허정 과도정부는 개헌을 단행하려 하였다. 1960년 5월 대구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선 국회 해산 후 개헌’을 주장하며 제4대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과]

4대 국회 해산 요구는 이승만 정권의 제1공화국 때 구성된 제4대 국회는 개헌을 할 자격이 없다며 대구 지역 중고등학생들이 벌인 정치운동이다. 4대 국회 해산 요구는 1960년 5월 2일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현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 대건고등학교 학생 700여 명, 대륜중학교 학생 400여 명,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과 대구대학교 학생 등 6,000여 명의 학생들이 ‘선 국회 해산[선 선거] 후 개헌’을 요구하며 대구 시내 중심가에서 벌인 가두시위에서 시작되었다.

대건고등학교 학생들은 ‘학생의 피를 헛되게 하지 말라’, ‘현 국회는 즉시 해산하라’, ‘민주당 군소정당은 자중하라’, ‘자유당 잔당을 완전히 숙청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펼쳤다. ‘12년 원흉 뿌리까지 뽑아라’, ‘양심 없는 국회서 개헌이 웬 말이냐’, ‘4·19 피가 운다. 4대 국회 물러가라’, ‘이것저것 다 글렀다’ 등의 구호도 등장하였다.

1960년 5월 3일에는 대구농림고등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능인고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대구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펼쳤다. 오성고등학교, 영신고등학교, 중앙상업고등학교[현 대구중앙고등학교], 성광고등학교, 원화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도 ‘4대 민의원의 총사퇴’, ‘3·15부정선거에 관여한 악질 관리의 처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펼쳤다.

한편 ‘선 국회 해산 후 개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중고등학생들과는 달리 대학생 측은 ‘선 개헌 후 선거’라는 입장을 밝혔다. 1960년 5월 3일 대구 지구 계엄사무소의 주선으로 경상북도청 회의실에서 55개 중고등학교 학생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중고등학교 학생 대표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 결과 학생 대표들은 시위 중단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선 국회 해산 후 개헌’ 입장은 유지한 채 자신들의 입장을 언론과 대중 결의를 통하여 선전 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의하였다.

[결과]

다음 날인 5월 4일 대구의 55개 공사립 중고등학교 및 5개 대학교 학생 대표 72명이 경상북도청 상황실에 모여 대구 시내 중고등학교·대학대표자회의를 개최하였다.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학생들이 각자의 입장을 놓고 토의한 결과 ‘선 개헌 후 선거’에 합의하였다. 이어 행동을 통일하기 위하여 단일한 조직체 구성에 합의하였다.

[의의와 평가]

4대 국회 해산 요구는 대구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벌인 정치운동으로 당시 대구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정치 참여의식이 높았음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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