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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50
한자 述懷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946년연표보기~1954년연표보기 - 『술회』 박중양 저술
성격 문헌|단행본|회고록
저자 박중양
표제 술회(述懷)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이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일기 형식으로 쓴 회고록.

[개설]

『술회(述懷)』는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관료 박중양(朴重陽)[1874~1959]이 1954년부터 1954년까지 일기 형식으로 쓴 회고록이다. 박중양은 경기도 양주 출신이며, 1906년 경북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로 임명되어 대구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박중양대구읍성(大邱邑城)과 객사를 무너뜨려 일제의 대구 침탈에 협력하였고, 3.1운동자제단(自制團)을 결성하여 민족의 독립운동을 방해하였다. 박중양은 경상북도관찰사, 황해도지사를 거쳐 1943년에 조선총독(朝鮮總督)의 자문 기구인 중추원(中樞院)의 부의장이 되었다. 1945년에는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칙임(勅任) 의원 및 국민의용대(國民義勇隊) 조선총사령부 고문이 되어 일제의 식민 지배와 전쟁 동원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술회』는 친일 관료 박중양이 광복 후 미 군정기, 정부 수립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자신의 친일 반민족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다시 재기하고자 하는 의지를 시대 감상담으로 썼다.

[서지적 상황]

『술회』박중양이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대구에서 일기 형식으로 쓴 필사본이다. 회고담과 시대에 대한 감상담으로 술회되었다. 『술회』의 분량은 전체 335쪽 정도이며, 출판은 되지 않았다.

[구성/내용]

『술회』는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회, 이완용(李完用)[1858~1926] 옹호,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의 정당성, 조선의 민족성 폄하, 삼일절 폄하, 시국 감상 등으로 구성되었다. 『술회』에서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서는 정치가 부패하여 국민이 고통을 받았던 시기로 평가하면서 조선 후기 지배 권력의 부패가 한국을 쇠망하게 한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완용에 대하여서는 매국노가 아니라 세계적 위인이라고 강변하였다. 일제의 식민 통치에 대하여서는 “암흑 시대 조선을 현대 조선으로 개신하게 하였고, 차별을 없애고 인재 등용이 이루어지게 하였다”라고 주장하였다.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하여서는 편협성, 배타성, 험담, 나태, 의존성, 놀고먹기 등이 만연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조선인의 악벽((惡癖)”이라고 강변하였다. 삼일절 기념행사에 대하여서는 “일본 제국의 신민이었던 자들이 삼일절을 떠들고 있는 것은 가소롭다”라고 강변하였다. 반민족행위처벌법(反民族行爲處罰法)에 대하여서는 “시대 변혁의 희생"으로 간주하면서, “고왕금래(古往今來)를 대관하면 일소(一笑)에 불과한 희비극이다”라고 강변하였다.

[의의와 평가]

박중양『술회』는 역사적 반성 없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자신의 친일 반민족 행위를 정당화하고 한국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운동 세력에 대하여 폄훼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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