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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35
한자 土産物
이칭/별칭 토산,물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재두

[정의]

조선시대 대구 지역의 각 고을에서 많이 생산되는 물건, 토산, 물산.

[개설]

토산(土産) 혹은 토산물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서 다른 고을에 비하여 많이 생산되는 물건으로 물산(物産)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대구부는 영역 내에 고산지대, 평야지대, 하천을 두루 갖추었고, 기후가 온화하고 수량이 풍부하며, 토질이 비옥하였다. 이에 따라 농산물, 어산물, 임산물, 약재 등이 고루 생산되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조선 성종 대의 대구부 토산물로 붕어[즉어(鯽魚)], 은어[은구어(銀口魚)], 황어(黃魚), 백복령(白茯苓), 감[시(枾)], 잣[해송자(海松子)], 송이[송심(松蕈)], 죽전(竹箭), 호두[胡桃], 입초(笠草), 지황(地黃)이 있으며, 죽전은 왕산(王山)에서 난다고 하였다. 조선 중종 대에는 잉어[리어(鯉魚)], 지치[자초(紫草)], 옻[칠(漆)], 석류, 쇠무릎[우슬(牛膝)], 구기자, 인삼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 물산을 보면, 인삼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1658년(효종 9년) 대구부에 약령시가 개설되었다. 내의원 도제조가 왕실용 약재 중 태반이 경상도에서 올라왔으며, 그중 백출[삽주덩이뿌리]은 모두 경상도 산물이라고 할 정도로 대구부 경상감영에서 부담하였다. 대구부는 감영과 함께 약령시가 개설되었고, 상업 도시화하면서 경상도의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대구부는 “산이 사방을 높게 막아 복판에 큰 들을 감추었으며, 들 복판에는 금호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낙동강에 합한다. 들이 넓고 땅이 기름져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인가가 줄지 않고 지리와 생리(生利)가 모두 여러 대에 이어 살 만한 곳”이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대구부에서 국가에 바친 진공(進貢)으로는 삽주덩이뿌리[백출(白朮)], 백작약, 적작약, 적복령, 울릉국화[감국(甘菊)], 멧미나리[시호(柴胡)], 인삼, 부들꽃가루[포황(蒲黃)], 측백나무열매씨[백자인(柏子仁)], 구기자, 연밥[연자(蓮子)], 속수자(續隨子), 개나리씨[연교(連翹)], 하눌타리씨[과루인(瓜蔞仁)], 백모향(白茅香), 생모과[생목과(生木果)], 단오에 바치는 말린꿩고기[단오건치(端午乾雉)], 납일에 바치는 날꿩고기[납평생치(臘平生雉)]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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