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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24
한자 厲壇
이칭/별칭 여제단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단

[정의]

대구 지역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혼령이나 돌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제사 지내던 제단.

[개설]

여단(厲壇)[여제단]은 대구 지역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혼령이나 돌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제사 지내던 제단이다. 조선 초 이래 각 고을의 관아가 있던 읍치 지역은 3단 1묘를 운영하였다. 사직단(社稷壇)은 관아의 서쪽에 있고, 여단은 관아의 북쪽에 있었으며, 문묘(文廟)와 성황단(城隍壇)[초기에는 성황사]의 위치는 일정하지 않았다.

[건립 경위]

여단은 조선시대 초 중앙 정부에서 각 고을의 지방관에게 자손이 없이 죽은 자들과 여역[역병, 역질, 돌림병, 감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제사 지내게 하여 민심을 달래고자 설치한 것이다. ‘모진 병’이라고 부르는 여역의 질병은 한 개인의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의 파멸과 농민의 유민화를 재촉하고 사회 혼란을 가져왔다. 조선시대 여제의 대상인 제사 받지 못하는 귀신을 뜻하는 무사귀신(無祀鬼神)에는 죽은 뒤에 후손이 없어 제사 받지 못하는 사자(死者)와 비명횡사(非命橫死)와 같은 불행한 죽음을 맞은 다양한 사자들이 포함되었다.

[위치]

1760년 대구부 여제단은 관아 북쪽 8리[3.14㎞] 침산, 현풍현은 북쪽 2리[0.78㎞]에 여단이 있었다. 가산산성 안에 관아가 있던 칠곡부 여단은 관아 북쪽 1리[0.4㎞]에 있다가 1819년 이후에는 북구 칠곡 지역으로 관아가 옮겨지면서 관아 남쪽 궁숭암(弓崇巖)에 설치하였다.

[현황]

대구·칠곡·현풍의 여단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국가에서 여단을 설치하고 여제(厲祭)를 지내는 것은 불행한 죽음을 맞은 사자가 지닌 해결 불가능한 위험을 여제를 통하여 해결하려는 종교적 실천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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