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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창군[가창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22
한자 壽昌郡[嘉昌郡]
이칭/별칭 가창군(嘉昌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757년 - 위화군에서 수창군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776년 - 수창군에서 위화군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940년 - 수창군에서 수성군으로 개칭
성격 행정구역

[정의]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개설]

수창군(壽昌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면서 주변의 현(縣)들을 거느린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양주(良州) 수창군(壽昌郡) 조에 수창군은 본래 위화군(喟火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고려 때]의 수성군(壽城郡)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고산 지역 제외], 남구, 달성군 가창면에 해당하며 주변의 대구현, 팔리현, 하빈현, 화원현을 거느리고 있었다.

[명칭 유래]

『삼국사기』 지리지 수창군 조 세주에 수(壽)는 가(嘉)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수를 가로 잘못 쓴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가창 역시 현재 지명에 사용되고 있다. 757년에 지명을 중국식[漢式]으로 개정할 때 위화군수창군으로 고쳤다. 776년(신라 혜공왕 12)에 지명을 예전의 것으로 되돌렸는데, 대체로 신라 말까지 신구의 2개 지명이 병용된 듯하다.

[형성 및 변천]

수창군은 신라 통일기 주(州)-군(郡)-현(縣) 체제에서 양주(良州)[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에 소속되었다. 신라 군현제에서는 군의 직할 영역을 따로 현으로 편제하지 않았으며, 그냥 수창군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수창군이라고 하면 영현(領縣)을 포함한 2단계 군급 행정구역을 지칭할 수도 있고, 영현을 제외한 직할 영역, 즉 3단계 현급 행정구역을 지칭할 수도 있다. 대구현(大丘縣)[현 대구 시내], 팔리현(八里縣)[현 북구 읍내동], 하빈현(河濱縣)[현 달성군 하빈면], 화원현(花園縣)[현 달성군 화원읍]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직할 영역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고산 지역 제외], 남구, 달성군 가창면에 해당한다.

치소(治所)는 수성구 상동, 중동, 수성동[하동], 그중에서도 수성초등학교 인근으로 추정된다. 수성초등학교와 인근 상동 우방아파트 부지에서는 통일신라의 주거지가 확인되었으며, 2019년 중동 356-7번지 아파트 건립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는 통일신라의 석축 유구와 연화문(蓮花紋) 수막새, 당초문(唐草紋) 암막새, 귀면와(鬼面瓦), 치미편(鴟尾片) 등이 출토되어 관아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940년(태조 23) 전국의 군현(郡縣) 명칭을 개정하면서, 수창군수성군으로 개칭하였다.

[자연환경]

가창면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금호강으로 들어가는 신천 상류 지역과 하류의 동쪽 지역에 해당한다. 동쪽은 장현(墻峴), 즉 담티고개를 경계로 경산과 접하고, 남쪽은 팔조령을 경계로 청도와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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