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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화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000
한자 達句火縣
이칭/별칭 달구불,달구벌,달구화성,달구화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달구화현에서 대구현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776년연표보기 - 대구현에서 달구화현으로 개칭
성격 행정구역

[정의]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개설]

달구화현(達句火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양주(良州) 수창군(壽昌郡) 조에 대구현(大丘縣)은 본래 달구화현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고려 때]도 그대로 쓴다고 되어 있다.

[명칭 유래]

757년에 지명을 중국식[漢式]으로 개정할 때 달구화현대구현으로 고쳤다. 776년(혜공왕 12)에 지명을 예전의 것으로 되돌렸는데, 대체로 신라 말까지 신구의 2개 지명이 병용된 듯하다. 달구화(達句火)는 ‘달구불[火]’로 읽었을 것이고 ‘달구벌(達句伐)’로도 표기하였다.

[형성 및 변천]

통일신라시대에는 달구화현위화군(喟火郡)에 속하였지만, 삼국시대에는 달구화가 군(郡)의 중심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달구화에서 위화로의 중심 이동은 신문왕의 달구벌 천도 시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삼국시대에는 아직 현제(縣制)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달구화성 혹은 달구화촌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261년(첨해이사금 15)에 쌓아서 나마(奈麻) 극종(克宗)을 성주로 삼았다고 되어 있는 달벌성(達伐城)은 현재의 달성토성에 비정되며, 달벌성이 바로 달구화의 치소(治所)로 추정된다. 달성토성 주변에는 5세기를 중심 연대로 하는 대형 고총(高塚) 고분들이 다수 분포하였는데[달성 고분군], 현재는 도시화로 대부분 봉분이 사라져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달성 고분군은 대구 지역에서 가장 우월한 고분군으로 삼국시대 달구화의 중심적인 위상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환경]

달구화현은 북쪽으로 흘러 금호강으로 들어가는 신천 하류 지역, 대체로 그 서쪽 지역에 해당한다. 금호강이 북쪽과 서쪽으로 돌아 나가고 남쪽에는 앞산[658.7m]이 우뚝 솟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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