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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장계등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991
한자 嶺營狀啓謄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52년연표보기 - 『영영장계등록』 집필
편찬 시기/일시 2004년 - 『영영장계등록』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에서 역주
소장처 일본 교토대학 중앙도서관 - 일본 교토부 교토시 사쿄구
간행처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 80[산격동 1370-1]지도보기
성격 장계
저자 조재호
권책 1책
행자 10행×20~22자
어미 상하내향(上下內向) 이엽화문어미(二葉花紋魚尾)
권수제 건륭16년6월 일영영장계등록(乾隆十六年六月 日嶺營嶺營狀啓謄錄)

[정의]

조선 후기 문신인 조재호가 1751년 6월부터 1752년 3월까지 경상감영에서 올린 장계를 모아 엮은 책.

[개설]

『영영장계등록(嶺營狀啓謄錄)』은 조재호(趙載浩)[1702~1762]가 경상감사로 재임하였던 시기에 중앙 정부에 올린 장계를 모아 엮은 책이다. 1751년 6월 15일 중군 조위진이 하인 대동을 청하는 장계부터 1752년 3월 19일 사직을 청하는 장계까지 9개월 동안의 장계를 모았다.

[저자]

조재호는 좌의정 조문명(趙文命)의 아들이며, 영의정 조현명(趙顯命)의 조카이고,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부인인 효순왕후(孝純王后)의 오빠이다. 조재호는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세자]가 화를 입게 되자 사도세자를 구하려고 서울로 올라갔으나, 오히려 역모로 몰려 종성으로 유배·사사되었다가 1775년(영조 51) 신원(伸寃)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영영장계등록』은 현재 일본 교토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4년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에서는 황위주와 강정서가 역주하여 영인한 원문과 함께 출판하였다.

[형태/서지]

『영영장계등록』은 사주쌍변(四柱雙邊)과 계선(界線)이 인쇄된 10행의 괘판(罫板)에 행마다 20~22자로 묵서(墨書)하였다. 판심은 상하내향(上下內向)의 이엽화문어미(二葉花紋魚尾)가 새겨져 있으며 판심제(版心題)는 없다.

[구성/내용]

『영영장계등록』은 지역민의 민원이나 공사의 일로 처리하거나 관련 사건에 대하여 국왕에게 보고한 문서를 날짜별로 정리한 것이지만, 일부 날짜순으로 배열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날짜별로 내용만 베낀 까닭에 문서의 앞뒤 부분에 따르는 형식 어구나 체제와 관련된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본문 위 세 군데에 작은 글씨로 기록한 별개의 문서는 책을 완성한 이후에 미처 수록하지 못한 문서를 기록한 것이다.

『영영장계등록』을 보면 당시 경상감사가 작성한 장계는 하루에 0.5건 정도였으며, 조세 관련 내용이 가장 많았다. 경상도 관내에서 관리하는 죄수에 대한 정기 보고가 장계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사법 관련 장계도 많았다. 또한 표류선에 대한 내용과 왜관 관리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영영장계등록』은 감사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제도적인 직무와 권한을 구체적인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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