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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518
한자 鳳德洞
영어공식명칭 Bongdeok-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봉덕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8년 -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봉덕동에서 경상북도 대구부 봉덕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38년 - 경상북도 대구부 봉덕동에서 경상북도 대구부 동부출장소 봉덕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북도 대구부 동부출장소 봉덕동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봉덕봉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1년 -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봉덕동에서 대구직할시 남구 봉덕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대구직할시 담구 봉덕동에서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면적 6.25㎢
가구수 19,322세대
인구[남/여] 38,710명[남자 18,507명|여자 20,203명]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봉덕동(鳳德洞)은 대구광역시 남구 법정동 3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는 감나무골, 강당골, 고산골, 매화골[매화정], 산대못안, 삼정골[三井谷], 안마실, 용두골(龍頭골) 등이 있다. 삼정골은 앞산 골짜기 물이 복류하여 우물 세 곳에서 솟아 난다 하여 명명되었다. ‘고산골’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어느 임금이 왕자가 없어 걱정하던 중 꿈에 신령이 나타나 고산에서 불공을 드릴 것을 권하였다. 그래서 임금이 절을 창건하여 불공을 드려 두 왕자를 얻게 되었다. 임금은 신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사찰을 짓고 석탑을 세워 고산에 있는 절이라 하여 ‘고산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고산사가 있는 골짜기라 하여 ‘고산골’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산골 옆에 위치하는 강당골은 골짜기의 맑은 물의 풍광을 고려하여 주변에 ‘ㄴ자’ 모양의 누각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누각을 관리하는 별도의 건물을 지어 ‘강당’이라고 불렀다. 강당골은 ‘강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던 골짜기에서 유래한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봉산동(鳳山洞)과 덕산동(德山洞)을 합치면서 두 동네의 이름 앞 자 한 자씩 가져와 ‘봉덕동’이 되었다. 한편 봉덕동 유래와 관련한 전설도 전해 온다. 신라 51대 진성여왕 시절, 계속되는 흉년으로 나라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때, 동네 터줏대감에게 노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수도산 기슭에 있는 웅덩이 물을 저녁마다 떠서 봉황이 마시도록 부근에 놓아 두어라”라고 하였다.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물줄기가 잡혀 훌륭한 저수지를 만들어 해마다 풍년이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으로 터줏대감의 세 아들 대봉(大鳳), 봉덕(鳳德), 봉산(鳳山) 모두가 벼슬을 하고 잘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 삼형제에게 인근 논과 밭을 물려 주어 살게 한 곳이 바로 대봉동, 봉덕동, 봉산동이라고 전해 온다.

[형성 및 변천]

봉덕동은 과거 대구부 상수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봉덕동으로 개설되었다. 1918년 경상북도 대구부로 편입되면서 일부를 대봉동에 넘겨주어 동 경계 조정이 이루어졌다. 1938년 경상북도 대구부 동부출장소 봉덕동이 되었다가 1963년 출장소가 구로 승격하면서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봉덕동이 되었다. 1970년 봉덕1동, 봉덕2동, 봉덕3동으로 분리되었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으로 1981년 대구직할시 남구 봉덕동, 1995년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이 되었다. 봉덕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봉덕1동, 봉덕2동, 봉덕3동으로 구성된다.

[자연환경]

봉덕동산성산[653.4m] 정상부를 비롯하여 고산골에서 흘러내린 계류는 신천으로, 강당골삼정골에서 흘러내리는 계류는 대구천으로 흘러가 달서천으로 합류한다. 앞산[659m]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인 약 700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화산암이 주로 분포한다. 화산암 주변으로는 1억 년 전 호수에 퇴적된 퇴적암이 화산 폭발과 불국사관입암류에 의해 변성된 변성퇴적암을 비롯해 화강암류, 규장암류 등도 분포한다. 산지를 벗어난 분지에 해당하는 지역은 1억 년 전 호수에 퇴적된 퇴적암으로 이루어진다.

[현황]

봉덕동의 면적은 6.25㎢이며, 인구는 2021년 9월 30일 현재 총 1만 9322가구에 3만 8710명[남자 1만 8507명, 여자 2만 203명, 외국인 제외]이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이천동, 중구 대봉동, 수성구 중동·상동·파동, 달성군 가창면 등지와 경계를 이룬다. 앞산신천에 인접한 관계로 동쪽은 신천대로달성군 가창면을 지나 청도로 이어지고, 남쪽은 2013년에 개통된 앞산터널수성구 범물동달서구 상인동을 이어 주고 있다. 대구 시민의 휴식처인 앞산으로의 접근성이 매우 좋다.

공공시설로는 대구광역시 남구청, 경일여자고등학교, 협성고등학교, 경일여자중학교, 한국대구화교중고등학교, 협성경복중학교, 대구봉덕초등학교, 대구효명초등학교, 남구국민체육센터 등이 있고 상설 재래시장으로는 봉덕시장이 있다. 앞산공원에는 927년 대구 팔공산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공산전투에서 크게 패한 왕건앞산에 처음 숨어든 은적굴이 있고, 고산골 공룡공원, 고산골 벚꽃능선길, 앞산자락길, 산성산 일출, 왕건호국역사길[은적굴] 등은 앞산8경으로 선정된 관광명소로 많은 탐방객이 찾는다. 문화재로는 통일신라기에 축조된 용두토성과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파악되는 법장사삼층석탑[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2006년 고산골 공룡 발자국 화석을 비롯하여 건열, 연흔 등의 퇴적 구조가 발견되어 일대에 고산골 공룡공원이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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