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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166
영어공식명칭 Anjiranggol
이칭/별칭 안좌령(安座嶺),안지랭이,안지랑이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해당 지역 소재지 안지랑골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지도보기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앞산에 있는 골짜기.

[개설]

안지랑골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앞산에 발달한 골짜기이다. 대구광역시 분지 남쪽을 에워싸는 비슬산지의 한 부분인 앞산에 해당한다. 앞산에 발달한 골짜기 중 큰골, 고산골, 달비골과 더불어 비교적 규모가 크다. 안지랑골에는 927년(태조 10) 대구 팔공산에서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과 후백제 견훤(甄萱) 간에 벌어진 공산전투(公山戰鬪)와 관련하여 안일암(安逸庵), 왕굴(王窟), 왕정(王井) 등의 지명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명칭유래]

안지랑골 유래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첫째, 조선시대 세종(世宗)의 형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앞산 안지랑골에 와서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안좌령(安坐嶺)이 유래하였고 나중에 ‘안지랭이’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둘째, 안지랑이 계곡에 철분이 많아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안지랑골 물로 몸을 씻으면 가려움증이 사라져, 앉은뱅이도 나아서 걸어갔다 하여 ‘안지랑이’가 유래하였다는 설이다. 셋째, 대구 도심지에서 안지랑골을 바라보면 아지랑이가 가득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아지랑이’가 ‘안지랑이’가 되었다는 설이다. 넷째, 공산전투와 관련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927년 팔공산에서 크게 패하고 앞산으로 숨어든 왕건안지랑골 안일암에서 잠시 쉴 때, 견훤왕건을 잡기 위하여 왔다. 견훤의 조상은 지렁이이고, 견훤은 후백제 왕이므로 ‘왕지렁이’가 되고, 왕지렁이가 왕건을 잡으러 온 골짜기라 하여 ‘왕지렁골’로 불리다가 나중에 ‘안지랑골’로 변하였다는 설이다.

[자연환경]

대구광역시를 구성하는 주요 암석은 세 종류로 구분된다. 대구분지 바닥은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당시 호수였으며, 당시 운반되어 온 물질들이 퇴적되어 형성된 퇴적암이 가장 오래된 암석이다. 다음으로 오래된 암석은 7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암인데, 대구분지 남쪽을 에워싸는 비슬산 일대를 가리킨다. 대구에서 가장 젊은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 말에 해당하는 약 6500만 년 전에 땅속 마그마의 관입으로 형성된 불국사 관입암류이며 화강암, 규장암, 암맥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대구분지를 구성하는 퇴적암 중에는 화산암과 마그마 관입으로 인하여 변성된 변성퇴적암도 분포한다. 안지랑골 일대의 암석은 화산암[안산암질 각력암], 관입암[규장암], 변성퇴적암 등으로 이루어진다.

[현황]

과거 명소였던 안지랑골 일대 약수터와 빨래터는 개발로 사라지고 지금은 앞산빨래터공원이 조성되어 옛날의 명성을 전할 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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