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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005
한자 -大邱廣域市 中區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주연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를 이루는 골목 명소.

[개설]

대구광역시의 면적은 883.56㎢이며 8개 구군을 거느리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구가 7.06㎢로 가장 작다. 하지만 중구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대구의 최중심지이다 보니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역사가 보존되어 있으며, 각 시대별 문화가 나이테처럼 아로새겨진 곳이다. 전국 최초로 대중교통 전용지구를 개통하여 사람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한 대구광역시 중구는 차량으로 지나갈 때보다 골목 구석구석을 걸을 때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골목들]

1. 남산인쇄골목

수도권을 제외하고 전국 최대 규모의 인쇄단지가 중구에 있다. 1930년대에 형성돼 약 90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대구 인쇄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남산인쇄골목이다. 남문네거리를 중심으로 계산오거리까지 500m 남짓한 거리에 둥지를 튼 인쇄업체들은 매해 연말이면 달력을 실어 가는 사람들, 인쇄물을 담아 가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남산인쇄골목 없이는 대구의 관공서들이 문을 열지 못한다는 말을 할 만큼 호황을 누렸던 1990년대에는 2,000여 개의 업체까지 문을 열었으나 현재는 520여 개의 업체만 남아 역사를 지키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쇄의 양이 대폭 줄고 있는 추세여서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고 있다. 다만 최근 남산인쇄골목대구중구골목투어 제5코스에 포함되면서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져 다시 한 번 관광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2. 남산자동차부속골목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남산자동차부속골목은 서울의 장안평자동차거리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자동차 골목이다. 명륜삼거리부터 명덕로까지 약 400m의 거리에 자동차 관련 업체 90여 곳이 모여 있다. 1960년대 미군 부대의 폐차에서 나온 부품으로 자동차를 수리하며 형성된 남산자동차부속골목은 대구의 큰 택시회사들도 인근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규모가 확장되었다. 명덕로터리에서 계명네거리까지 자동차 부품업체부터 폐차장, 세차장들이 들어섰으며, 1980년대에는 도로 확장까지 이루어져 130개의 자동차 부속품 업체가 호황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2년에 정부가 대대적인 불법튜닝 단속을 하면서 남산자동차부속골목은 일시에 위축되었다. 활기를 잃어 가던 자동차골목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이다. 전국 유일 길거리 모터쇼인 ‘제1회 대구남산동모터쇼’가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자동차부속골목 전체 거리를 무대로 8대의 슈퍼카를 포함한 총 36대의 차량들이 전시되어 수만 명의 관광객이 골목을 찾았다. 남산자동차부속골목의 전문 기술과 쌓여온 신뢰를 기반으로 선팅, 오디오, 시트, 조명, 경보기 등 자동차에 관련된 모든 부품업체들이 홍보 효과를 누렸다. ‘대구남산동모터쇼’는 2회부터 ‘대구스트리트모터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꿔 진행되었으며, 다시 일어선 남산자동차부속골목은 현재도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3. 인교동 오토바이골목

조선시대에는 서문시장의 물건을 실어 나르는 말들이 떼 지어 서 있던 말전거리에 현재는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다. 시대는 변하여도 당대의 주요 교통수단이 사고 팔리는 곳이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이다.

본래 하천이던 곳을 1953년 복개하여 인근 상가와 인접하게 된 인교동에는 1960년대부터 오토바이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말 터를 잡은 영남오토바이상회와 1961년 문을 연 서울오토바이상회를 통하여 입소문이 난 뒤로 점차 확산되어 500m 가까이 오토바이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이색거리가 되었다. 1990년대까지 성업을 이룬 인교동 오토바이골목대구중구골목투어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 포함되어 이제는 관광지로서의 몫을 다하고 있다. 2016년 7월 3일 KBS 2TV 「다큐3일」에서는 대구 인교동 오토바이골목의 ‘부르릉! 엔진 소리에 가슴이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오토바이어들의 성지답게 라이딩 소품 가죽 공방, 오토바이 시트 리폼 전문점, 장애인용 오토바이 제작 업체, 전기 오토바이 전문점까지 가히 오토바이의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달성공원역 4번 출구와 서문시장역 1번 출구가 인접한 인교동 오토바이골목은 얼마든지 시승이 가능하고, 자신과 어울리는 디자인도 직접 눈으로 비교하며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4. 교동 전자골목

동성로에서 대구역으로 가는 길인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1동의 교동 전자골목은 교동시장 내의 핵심 상가 구역이다. 1956년 교동시장이 생긴 직후 미군부대에서 쏟아져 나온 군수품이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양키시장으로 활성화된 교동 전자골목은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주로 녹음기, 텔레비전 같은 전자제품을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껏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가전산업이 급성장한 1980년대에는 줄지어 선 손님들 때문에 상인들이 돈을 셀 시간조차 없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컴퓨터의 대중화로 전문점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전자부품과 전기 조명까지 가세하면서 영남권 최대의 전자골목으로 거듭났다. 옛 동성로 치안센터에서부터 신한은행 대구중앙지점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지키는 교동 전자골목은 한동안 인터넷쇼핑몰과 대기업 전자유통점에 손님을 잃었다. 또한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2동대구종합유통단지 전자관 등으로 상당수의 점포들이 옮겨 가면서 교동 전자골목의 규모는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실정이다. 그런데 오히려 최근 들어 복고 바람이 불면서 추억의 라디오, LP 음반 등을 찾는 손님들이 있어 골목은 여전히 붐빈다. 또한 ‘교동 도깨비야시장’이 문을 열면서 유동인구가 늘었고, 전자골목도 덩달아 활성화되고 있다.

5. 북성로 공구골목

설계도만 가져오면 탱크도 만들어 준다는 골목이 있다. 대구의 첫 번화가였던 북성로에 1.15㎞ 규모로 형성된 북성로 공구골목 이야기다. 해방 이후 1947년경 미군보급창고와 미군부대 등에서 흘러나오는 폐공구를 수집하여 판매하던 것이 시초였다. 망치와 펜치 등 여러 공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달성공원 건너편 북성로 공구골목 입구에 서 있다. 달성로에서부터 대우빌딩 서편까지 각종 공구를 제작, 판매하는 420여 개의 업체가 북성로 공구골목을 대표하고 있다. 1970~1980년대에는 점포 수가 600여 개에 이르렀고, 숱한 명장들이 배출되었다. 공구골목이 있는 북성로는 대구에서 가장 먼저 신작로가 정비되었으며 도로포장 또한 최초로 시행된 번화가였다. 이후 번화가의 자리를 향촌동으로, 동성로로 넘겨주었지만 옛 명성에 걸맞는 문화와 관광명소로 거듭나는 중이다. 대구광역시 중구청북성로 도로 정비와 간판 정비, 공구박물관 개설, 순종황제어가길 조성 등으로 새롭고 특색 있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1930년대 쌀 창고였던 건물을 개조한 ‘공구박물관’이 2018년 개관하여 공작 체험 공간, DIY 공간, 공구 전시 공간, 교육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북성로를 역사전통 문화마을로 조성하는 차원에서 공업기술을 전승, 기록하는 공간인 ‘모루’가 문을 열었다. 전시관, 장인작업장, 창작공간 등을 갖추고 있는 모루에서는 수직 발동기, 녹슨 수동 연마기, 낡은 드릴링 머신 등 희귀 공구도 구경할 수 있다.

[멋 좀 부릴 줄 아는 골목들]

6. 향촌동 수제화골목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는 평생 구두만 만들어온 장인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있다. 1970년대에 생긴 향촌동수제화골목은 약 300m 길이의 거리로, 수제화의 재료가 되는 가죽을 거래하는 가게를 비롯하여 60여 개의 가게가 있다.

대구의 수제화는 1960년대부터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였다. 초창기에는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에 있던 자유극장 주변에 수제화 가게들이 있었으며, 특히 분홍신, 칠성구두 등의 가게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던 곳이었다. 지금 향촌동에 있는 수제화 명인들도 화전동에서 기술을 배운 경우가 대다수다.

1960년대의 향촌동은 다방과 술집으로 가득 찬 대구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그러다 상권이 동성로로 옮겨지면서 화전동에 있던 수제화 기능공들이 향촌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자식이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던 전통처럼,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에 취업할 때 부모는 구두를 사주었기에 수제화 골목은 늘 붐볐다. 향촌동 수제화골목은 한때 130여 개의 수제화 공장과 점포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대량생산의 값싼 중국 제품들이 들어오고 2000년대 대형마트가 확산되면서 수제화 업체들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대구수제화협회는 수제화골목의 활성화를 위하여 2013년 공동브랜드 개발과 공동판매장 운영을 목표로 하는 수제화골목 공동브랜드 ‘편아지오’를 만들어 문을 열었다. 또한 2014년부터 대구 수제화골목 축제 ‘빨간구두 이야기’도 진행하였다.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만들 수 있는 향촌동수제화골목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을 직접 재고 가죽을 손으로 당기고 굵은 바늘로 바느질을 한다. 발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이 있다면 그 부분만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으며, 원하는 디자인으로 변경도 가능하다. 맞춤 수제화는 한 켤레를 만드는 데 치수 기록, 재단, 라스트 깎기, 갑피, 저부 등의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약 1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수제화를 만드는 망치질 소리와 가죽냄새가 가득한 향촌동 거리에는 수제화의 역사, 제작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향촌수제화센터도 문을 열고 있다.

7. 교동 귀금속골목

1960년대 교동시장에는 군수품, 수입품들과 함께 서양의 시계가 들어왔고, 중고 시계 판매자와 수리업자들이 좌판 상권을 형성하였다. 그러던 상인들이 1970년대에 하나둘씩 가게를 열고 시계골목을 이루었으니, 지금의 교동 귀금속골목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계방 옆으로 금은방들이 자리를 잡고, 금을 다루는 장인들의 수작업 공방과 순금, 18K를 제조하는 대량생산 공장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제품 공급과 도매매장이 결합된 귀금속 도매시장이 시작된 셈이다. 더군다나 지리적으로 대구역과 가깝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저렴한 귀금속을 구매하기 위하여 방문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제조, 도매와 소매, 수리까지 가능한 교동 귀금속골목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였다.

직접 제조하고 판매까지 하는 주얼리의 메카로 불리는 교동 귀금속골목은 200여 개의 매장이 줄지어 선 특구이다. 시계 장인으로 꼽히는 박준덕 명장 등을 배출한 교동 귀금속골목은 현재도 귀금속 가공기술 특허를 가진 이들과 각종 기능대회에 입상한 베테랑들이 종사하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2005년 이 골목을 ‘패션주얼리특구’로 지정한 후 전주를 모두 정리하였고, 330여m 길이의 골목에 탄생석과 유리블록으로 꾸며진 점토블록을 깔았다. 또한 2011년에는 귀금속전문상가 패션주얼리전문타운을 준공하여 다시 한 번 골목의 부활을 알렸다. 전문성, 시장성, 대중성을 모두 확보한 교동 귀금속골목의 매장과 공방에서는 다음 세대의 인재 양성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먹는 게 남는 골목들]

8. 동인동 찜갈비골목

전국 제1호 착한 골목으로 선정된 동인동 찜갈비골목대구 10미 중 하나인 찜갈비를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골목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 있는 찜갈비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찌그러진 양푼에 소갈비와 마늘, 고춧가루 양념이 들어간 찜갈비가 푸짐하게 나온다. 우선 찜갈비를 먹고 남은 양념에는 밥을 비벼 먹는 것이 기본적인 코스다. 1960년대 중반 동인동의 한 식당에서 소갈비에 마늘과 고추를 넣은 후 볶아 팔던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 이와 같은 방식의 찜갈비집이 열 곳 넘게 운영 중이다. 반세기의 대구 역사를 간직한 ‘동인동 찜갈비’는 따로국밥, 뭉티기, 막창, 논메기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국수, 무침회, 야끼우동, 납작만두와 함께 대구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열 손가락에 꼽힌다. 이미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어 있어 외국인들도 많이 찾고 택배도 전국으로 나가고 있으므로 대구의 명물 골목을 이어 갈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9. 북성로 연탄불고기골목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2가 일대는 낮에 공구골목에서 밤이면 포장마차 거리가 된다. 해가 진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문을 여는 연탄불고기골목에서는 우불이 인기다. 우동과 연탄불고기 세트 메뉴를 줄인 말인데 야들야들한 간장불고기가 뜨끈한 우동국물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는 먹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서민음식으로 분류되어 온 연탄불고기와 우동은 젊은이들에게 소박한 분위기의 낭만적인 데이트 음식으로 각광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연탄불에 구워 내는 돼지불고기는 석쇠 아래로 기름기가 빠지고 연탄불맛이 그대로 전해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불고기를 연탄에 굽는 이유는 우선 포장마차에서 가스불을 끌어오기 쉽지 않아 오래 가는 연탄불을 사용하는 점과 고기 누린내를 잡아 주는 점 등이 꼽힌다. 1970년대 중반부터 모습을 드러낸 북성로 연탄불고기골목은 KBS 2TV 「다큐 3일」, SBS 「런닝맨」, 「백종원의 3대 천왕」 등에 소개될 만큼 대구의 입맛 명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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