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금릉병사억질상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327
한자 聞金陵兵事憶姪相定
영어공식명칭 Missing Lee-Sangjeong, Nephew, After Hearing About The Military News Of Geumreung
이칭/별칭 「금릉의 군사 소식을 듣고 조카 이상정을 그리워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81[수창동 101-1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70년 - 이일우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36년 - 이일우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49년 - 『성남세고』 간행
배경 지역 우현서루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81[수창동 101-11]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율시
작가 이일우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조카 이상정을 걱정하면서 지은 한시.

[개설]

「문금릉병사억질상정(聞金陵兵事憶姪相定)」을 지은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고종 41) 한성을 유람하고 세상의 정세를 통찰한 뒤 옛 전통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느낀 이일우는 돌아와서 영재를 교육할 계획을 세우고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우현서루(友弦書樓)를 설립하였다. 한일합병조약 이후 달성친목회(達城親睦會) 사건에 연루되어 1911년에 우현서루가 철폐되고 강의원(講義院)으로 운영되었다.

이일우의 조카 이상정(李相定)[1896~1947]의 본관은 월성(月城)이고, 호는 청남(晴南)·산은(汕隱)이다. 별명으로 이연호(李然浩)·이직(李直)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고, 큰아버지는 이일우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2016년에 발행된 『국역 성남세고(國譯城南世稿)』에서는 「문금릉병사억질상정」의 제목을 쉬운 우리말로 풀이하여 「금릉의 군사 소식을 듣고 조카 이상정을 그리워함」이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문금릉병사억질상정」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내용]

창망금릉사입미(悵望金陵思入微)[슬프게 금릉을 바라보니 생각이 희미해지는데]

분분리난신서희(紛紛離亂信書稀)[어지러운 난리 속에 소식조차 드물구나]

십년풍설상다병(十年風雪常多病)[십 년 동안 눈보라에 항상 질병이 많았으며]

만리병진독미귀(萬里兵塵獨未歸)[만 리의 전란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네]

강상잔매회고국(江上殘梅懷故國)[강가의 지는 매화에 고국을 그리워하며]

천애명월의한의(天涯明月倚寒衣)[하늘 끝의 밝은 달에 차가운 옷을 걸치네]

원중명학대군구(園中鳴鶴待君久)[정원에서 우는 학이 너를 기다린 지 오래이니]

회수편표수막위(回袖翩翲須莫違)[소맷자락 펄럭이며 돌아오기를 저버리지 말게나]

[특징]

「문금릉병사억질상정」은 ‘미(微)’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의의와 평가]

「문금릉병사억질상정」은 일본군이 난징전투에서 승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만리타국에서 일본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조카 이상정을 그리워하며 지은 한시이다. 조카가 임무를 마치고 소맷자락 펄럭이며 금의환향하기를 학수고대하는 큰아버지의 심정을 피력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국내 가족과 친척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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