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70
한자 鄭經世
영어공식명칭 Jung Kyungse
이칭/별칭 경임(景任),하거(河渠),승성자(乘成子),석총도인(石潨道人),송록(松麓),우복(愚伏),문숙(文肅),문장(文莊)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3년연표보기 - 정경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2년 - 정경세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586년 - 정경세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8년 - 정경세 경상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07년 - 정경세 대구부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33년연표보기 - 정경세 사망
출생지 율리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율리
거주|이주지 상주 - 경상북도 상주시
수학지 한성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묘소|단소 정경세 묘소 -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산53-1
사당|배향지 도남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2길 91[도남동 175-1]
사당|배향지 덕림서원 -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면 대신리
사당|배향지 고산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성동 172]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연경서원 터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진주(晉州)
대표 관직 경상도관찰사|대구부사|좌참찬

[정의]

조선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하거(河渠)·송록(松麓)·승성자(乘成子)·석총도인(石潨道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계함(鄭繼咸)이고, 할아버지는 정은성(鄭銀成)이다.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정여관(鄭汝寬)이고, 어머니는 이가(李軻)의 딸 합천이씨(陜川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해(李海)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이결(李潔)의 딸 진보이씨(眞寶李氏)이다. 아들은 정심(鄭杺)·정학(鄭㰒)이며, 동생은 정흥세(鄭興世)이다.

[활동 사항]

정경세는 1563년(명종 18)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율리에서 태어났다. 1580년(선조 13)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582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86년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1588년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었고,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이봉(李逢)과 조헌(趙憲)의 휘하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다. 1596년에는 암행어사로 나가서 왜란으로 피폐해진 영남 지역을 순시하고 돌아왔다. 이후 홍문관교리·시강원문학·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598년 우승지·좌승지를 거쳐 4월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600년 모함으로 인하여 영해부사로 좌천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상주로 낙향하였다.

정경세는 1607년 다시 관직에 나아가 대구부사로 부임하였다. 대구부사 재임 시 연경서원(硏經書院)의 강학에 참여하여 대구부의 유학 진흥에 기여하였으며, 선정을 베풀어 영세불망비와 거사비가 세워졌다. 또한 소유정(小有亭)에서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에 남아 있다. 이후 전라도관찰사·강릉부사를 거쳐 대사헌·대제학·우참찬·좌참찬을 역임하였다. 1633년(인조 11)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경세의 저술로는 1657년(효종 8) 간행된 『우복집(愚伏集)』 20권 10책과 『상례참고(喪禮參考)』가 있다.

[묘소]

정경세의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부곡리 산53-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경세는 1633년 좌찬성으로 증직되었다. 1635년 상주 도남서원(道南書院)에 배향되었고, 1660년(현종 1) 문숙(文肅)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676년에는 김천 덕림서원(德林書院)에 배향되었다. 1693년(숙종 19) 문숙이었던 시호를 문장(文莊)으로 바꾸어서 내렸다. 1697년 대구 고산서원(孤山書院), 1706년 연경서원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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