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황제 대구 방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05
한자 純宗皇帝 大邱 訪問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09년 1월 7일연표보기 - 순종황제 남순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09년 1월 13일연표보기 - 순종황제 남순 종료
전개 시기/일시 1909년 1월 7일~1월 13일 - 대한제국 순종황제 남순[대구, 부산, 마산]
성격 역사 사건

[정의]

1909년 1월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대구, 부산, 마산을 방문하는 순행 중 대구를 방문한 사실.

[역사적 배경]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남순(南巡)은 1909년 1월 신년 하례식 자리에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졌다. 황제의 순행은 민심 안정, 지방 순시를 위한 것이었다.

1909년 1월 순종황제의 ‘남한(南韓) 순행 조칙’ 발표를 시작으로 1월 5일 각 도(道) 방문시찰단을 구성하고, 각 도에서는 봉영 준비위원을 구성하였다. 순종황제의 남순 일정은 1월 7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경부선 철도를 이용하여 대구에 도착하여 하루를 머물고, 1월 8일 부산, 1월 10일 마산, 1월 12일 다시 대구를 방문하고, 1월 13일 서울로 환궁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경과]

대한제국 순종황제는 대구 방문을 위하여 1909년 1월 5일 대한제국 정부의 경무국장 일행이 대구에 도착하여 대구경찰부장 등에 대하여 경호 준비에 만전을 기울일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경상북도관찰사 박중양, 대구군수, 이사관 등에게 한일 합동의 봉영회에 대한 준비 협상을 끝내고 황제가 묵을 행재소, 통감 숙소 및 관련 시설 등을 실사하도록 하였다.

순종황제가 1909년 1월 7일 오후 3시 25분 대구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첫 대구 방문이 시작되었다. 황제가 열차에서 내리자 화포가 발포되고, 음악이 울려 퍼졌다. 순종황제는 역내에 설치된 편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순종황제 일행은 박중양 경북관찰사를 선두로 하여 배종하는 문무관을 거느리고 봉련(鳳輦)[황제 전용 가마로 가마 꼭대기에 금동 봉황이 장식]을 타고 행재소가 설치된 경북관찰도청에 도착하였다.

황제는 경북관찰도청의 행재소에서 대구공소원장, 경북관찰사, 경남관찰사, 대구군수, 경북 경찰부장 등 관료들을 접견하고, 일본 육군소장, 대구이사청 이사관, 대구 일본인 거류민단 단장 등을 접견하였다. 1월 7일 저녁 이토 히로부미는 달성관에 대구의 유생과 유지를 초대하여 연설과 효유(曉諭)를 진행하였다.

순종황제가 1909년 1월 8일 부산으로 출발할 때, 봉영 나온 사람들은 대구 군민 4만여 명, 학생 1,636명, 대구상무소, 일진회 지부, 대한협회 대구지회 회원, 달성친목회 회원, 잠업전습소 수강생, 대구상업회의소 회원 등이었다.

순종황제는 1909년 1월 12일 마산을 출발하여 오전 11시 45분 다시 대구역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예정된 통로를 변경하여 행재소를 거치지 않고 12시 10분 화포가 쏘아 올려지는 달성공원에 도착하여 신축한 편전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순종황제는 편전 앞 광장에서 일본 어린이의 창가, 한일 소학교 학생의 운동회, 기생의 검무, 각 학교 학생의 행진 등을 관람하였다.

순종황제는 오후 1시 편전을 나서 통감, 의양군(義陽君)과 각 대신, 수행 일행과 함께 공원을 돌아본 후 봉련을 타고, 환영 인파의 만세 소리를 들으며 행재소로 향하였다. 순종황제 일행은 오후 1시 30분 행재소에 도착하여 경기 및 충청·전라·경상남북 7도 관찰사 그리고 고령자, 효자, 절부에게 접견을 허용하였다.

순종황제가 오후 2시 40분 내부대신 송병준을 통하여 내린 칙어에는 “순찰의 목적이 백성을 위한 것이고, 백성을 위하는 방법은 유신과 실제에 힘쓰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순종황제는 대구 방문 때 대구 교육비 명목으로 2,000원 등 한일 기관과 단체에 7,600여 원의 하사금을 주었다.

1909년 1월 13일 오전 7시 30분에 황제 일행은 행재소를 나서 의양군과 각 대신을 거느리고 대구 정거장에서 궁정 열차에 올라 오전 8시에 환궁길에 올랐다.

[결과]

순종황제는 1909년 1월 두 번에 걸쳐 대구를 방문하고 환궁하였다.

[의의와 평가]

순종황제의 대구 방문은 1909년 1월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황제의 최초 대구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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