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44
한자 嶠南敎育會
영어공식명칭 Gyonam Education Association
이칭/별칭 교남학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8년 3월 15일연표보기 - 교남교육회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2월 10일 - 교남교육회 안동지회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4월 25일 - 교남교육회 기관지 『교남교육회잡지』 창간
해체 시기/일시 1910년 11월 이후 - 교남교육회 해산
성격 교육운동 단체

[정의]

1908년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 단체.

[개설]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는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이자 애국 계몽 단체였다. 1개 면에 1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설립된 교남교육회는 ‘교남학회’라고도 하였다.

[설립 목적]

교남교육회는 국권 회복을 위한 계몽과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서울에 거주하는 박정동·이상호 등 영남 출신 인사 145명은 1908년 3월 8일 보광학교(普光學校)에서 ‘교남교육회 발기회’를 개최하였다. 3월 14일 서울 종로 청년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현영운 임시 회장과 임원을 선출하였다. 3월 15일 보광학교에서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 145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교남교육회가 설립되었다. 1909년 2월 10일에는 교남교육회 안동지회도 설립되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11월까지는 유지되었으나 해산당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교남교육회는 회장·부회장 아래 재무부·교육부·도서부를 두었고, 기간 부서로 총무·간사·회계를 두었다. 그 밖에 학무원(學務員)과 편술원(編述員)을 각 10명씩으로 구성하였다. 학무원은 교육부의 제반 사무와 학교 설립 운동을 주로 담당하였다. 편술원은 도서부의 여러 사무를 맡았고 각종 인쇄물을 제작하여 사회계몽운동을 펼쳤다.

교남교육회는 학교 설립 운동과 교육 구국 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교남교육회 본회는 서울에 사범학교를 설립하여 교원을 육성하고, 교남교육회 지회는 학교를 세워 근대 교육을 받은 지식인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교육의식을 높이고자 1909년 4월 25일 기관지 『교남교육회잡지(嶠南敎育會雜誌)』를 창간하고 교육 진흥과 민중 계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교남교육회잡지』는 1910년 5월까지 발간되었다. 서울에 사범학교를 설립한다는 계획은 실현하지 못하였지만 교남교육회가 주도한 ‘1개 면 1학교’ 설립 운동은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에 근대 교육기관이 설립되는 데 이바지하였다.

[현황]

교남교육회의 본부는 서울 전동(典洞)의 옛 한어학교(漢語學校)에 있었다. 교남교육회 회장은 이하영·박정동·이겸래·김낙헌, 부회장은 이상호·박두영·장길상, 총무는 손지현·이선호·권중훈·정태군, 평의회회장은 박정동·신철희·이상호, 평의원은 박정동·이각종 등 30명이었다. 재무부장은 장길상·이상필, 도서부장은 박정동·이용문, 교육부장은 안택중·신철희·서상거, 간사원은 이원식·이규한·김병필, 서기원은 류시봉·이종연, 회계원은 장택환·권중훈이었다.

교남교육회 전체 회원 수는 본회와 지회를 합쳐 약 600명 정도였다. 그 가운데 교남교육회의 대구 회원은 총 36명으로 강영주, 곽종필, 김경희, 김광제, 김기석, 김도균, 김병수, 김보동, 김용선, 김우근, 김종구, 박노성, 박노창, 박노철, 박병옥, 박정동, 이상호, 서상거, 서상일, 손영기, 우선기, 우찬동, 우하창, 이각종, 이갑성, 이경희, 이광로, 이규한, 이근영, 이근중, 이근하, 이종락, 최연극, 최정덕, 최종윤, 추백엽 등이었다. 교남교육회 경상북도 지역 회원 수 403명 가운데 구미[58명], 안동[53명] 다음으로 가장 많은 회원 수였다. 회원들은 주로 전·현직 관료, 전통 유생, 혁신 유림, 근대 교육을 받은 학생과 일본 유학생 등이었다.

[의의와 평가]

교남교육회는 국권회복운동기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 지역의 근대 교육기관 확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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