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88
한자 大邱師範 抗日學生 義擧 殉節同志 追慕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178[대봉동 60-1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73년 11월 3일연표보기 -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8년 -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3년 2월 14일 -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 현충시설로 지정
현 소재지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178[대봉동 60-18]지도보기
원소재지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178[대봉동 60-18]
성격 기념비
관련 인물 강두안|박제민|박찬웅|서민구|장세파
크기(높이, 너비, 두께) 4m[높이]
관리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장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에 있는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개설]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大邱師範抗日學生義擧殉節同志追慕碑)는 비밀결사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강두안(姜斗安)[1922~1944], 박제민(朴濟敏)[1919~1943], 박찬웅(朴贊雄)[1919~1943], 서민구, 장세파 5명을 기리기 위하여 1973년 11월 3일 건립되었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에 있다.

[건립 경위]

대구사범학교에는 1940년 11월 8~10기생들로 구성된 문예부, 1941년 1월 8기생이 중심이 된 연구회, 1941년 2월 조직된 9기생의 다혁당이라는 비밀결사 단체가 있었다. 비밀결사는 일본 패망을 예견하고 대비하여 민족의식을 높이고 독립을 위한 실력 배양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회보 『반딧불』이 일본 경찰 손에 들어가면서 비밀결사 단체가 발각되었다. 문예부, 연구회, 다혁당 소속 관련자 300여 명 중 35명이 체포되었고, 그중 강두안, 박제민, 박찬웅, 서민구, 장세파 5명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는 옥중에서 순국한 5명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위치]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0-18번지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교정에 있다.

[형태]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는 기단석 위에 기둥 3개와 비문이 적힌 사각형 조형물 1개로 구성되어 있다. 정중앙 기둥은 직사각형이고, 앞면에 한글로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라고 새겨져 있다. 높이는 4m이다.

[금석문]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 비문은 다음과 같다.

“겨레의 역사 오램이 자랑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 참되이 살았음이 자랑이요, 그들의 거룩한 행적이 겨레의 어려운 고비를 올바르게 이끎으로 해서 귀한 것이다. 여기 영원히 이 겨레의 자랑이 될 다섯 별 있으니 그 이름은 강두안, 박제민, 박찬웅, 서민구, 장세파. 1940년대의 전반은 이 겨레의 생명이 가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 때, 일제의 야만스런 민족 말살 정책이 드디어 우리의 말과 성까지를 못 쓰게 하자 굴욕을 죽음보다 싫어하던 우리들 대구사범 서른 다섯 피끓는 동지들은 조국과 자유를 되찾기 위하여 1940년 11월 23일 분연히 뭉쳤으니, 이른바 ‘다혁당’, ‘문예부’, ‘연구회’라. 기관지 ‘반딧불’, ‘학생’ 등이 가물거리는 민족 정신에 기름을 붓고 학창과 교단 또는 대중 속으로 행동의 폭을 넓혀 민족의 얼을 일깨우고 동지를 규합하여 세계 정치와 광복의 끝을 내다보며 동분서주하다가 일제의 악랄한 손에 서른 다섯이 모조리 대전 감옥으로 끌려가서도 해방의 날까지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 스물 안팎의 애띤 몸들로서 온갖 박해와 몰강스러운 고문을 끊임없이 당하면서도 끝내 지조를 굽히지 말자 버티다가 원통하게도 다섯 동지들은 상처 입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한밭 감옥 독방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그 원한 천추에 사무치리. 이제는 광복된 조국땅, 행여 그 이름 잊힐세라. 살아남은 우리들이 정성 모아 이곳 옛 배움터에 돌을 세워 님들의 빛나는 행적과 자랑스러운 이름을 깊이 새겨 영원히 우러러보려 한다. 고귀하고 굳센 님들의 얼 역사와 더불어 겨레의 심장 속에 길이길이 숨쉬리. 1973년 11월 3일 대구사범 항일 학생 의거 생존자 일동”

[현황]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는 규모가 작고 건립한 지 오래되어 1998년 두류공원에 부지를 조성하고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을 새로 세웠다.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조직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5명, 구속된 35명, 비밀결사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던 300여 명을 모두 기리고 있다. 2020년 현재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는 시설이 낡아 보존을 위하여 외부 입장을 금지하고 있다.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는 2003년 2월 14일 대구지방보훈청에 의하여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는 1920년대 전국적으로 일어난 학생운동이 194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194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주축이 학생이었음을 보여 주는 기념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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