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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삼백팔십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1398
한자 其三百八十二
영어공식명칭 Verses in the history of the East vol.382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41년 - 「기삼백팔십이」윤기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826년 - 「기삼백팔십이」윤기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77년 - 「기삼백팔십이」영인 간행
배경 지역 「기삼백팔십이」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근체시|칠언절구
작가 윤기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팔공산 일대에서 있었던 공산전투를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개설]

윤기(尹愭)[1741~1826]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이다. 이익(李瀷)을 사사하였다. 윤기는 1773년(영조 4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20여년간 학문을 연구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승문원정자를 초사(初仕)[처음 벼슬을 받음]로 해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예조·병조·이조의 낭관으로 있다가 남포현감(藍浦縣監)·황산찰방(黃山察訪)을 역임하였다. 훗날 『정조실록』 편찬관을 역임하였다. 벼슬은 호조참의에까지 이르렀다. 저서로 『무명자집(無名子集)』 20권 20책이 있다.

「기삼백팔십이」의 소재는 공산전투이다. 공산전투는 927년(태조 10) 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왕건 견훤(甄萱)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이다.

[구성]

「기삼백팔십이(其三百八十二)」는 4행으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이다. 윤기의 문집 『무명자집』 시고 6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동사(詠東史) 382번째 영사시(詠史詩)이다.

[내용]

「기삼백팔십이」[동쪽의 역사를 읊조린 영사시 382번째 시]의 전문이다.

토훤당일의기휘(討萱當日義旗揮)[견훤을 토벌하는 그날 의기를 휘날리니]/요전공산잠실기(邀戰公山暫失機)[공산에서 맞아 싸울 때 잠시 불리하였네]/

뢰유숭겸추기신(賴有崇謙追紀信)[기신을 본받은 대장 신숭겸의 도움으로]/려왕행득탈중위(麗王幸得脫重圍)[고려왕이 다행히 겹겹 포위 벗어났다오]

[특징]

「기삼백팔십이」는 1·2·4구(句)에 미(微) 계열의 운자를 두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기삼백팔십이」는 짧은 절구시에 한나라 기신의 고사를 활용하여 공산전투를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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