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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서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911
한자 柳湖書院
영어공식명칭 Yuho Confucian Academy
이칭/별칭 유호사,유호리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은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84년연표보기 - 유호리사 건립
원소재지 유호서원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지도보기
성격 사우|서원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에 건립된 송담 채응린괴헌 곽재겸을 제향 사우 또는 서원.

[개설]

유학자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과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1547~1615]은 생전에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다. 이에 후학들이 1784년(정조 8)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건립한 유호리사(柳湖里祠)에 사우를 건립해 제향했다. 일명 ‘유호사’라 불리기도 했는데 후에 백불암 최흥원에 의해 ‘유호서원’으로 칭하게 되었다. 이후 유호서원으로 승격하여 강당을 지었다. 동쪽 방은 ‘근사(近思)’ 서쪽 방은 ‘잠수(潛修)’라 했다. 1797년(정조 21)에 서재인 달류재(達流齋)를 짓고, 1805년(순조 5)에 동재인 소원재(溯源齋)를 세웠다.

[위치]

유호서원은 “대구부의 북쪽 20리 해서촌(解西村)”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이다.

[변천]

유호서원은 처음에는 사우인 유호리사만 있었다. 이후 유호서원으로 승격하면서 강당이 세워졌고, 뒤이어 동재와 서재를 모두 갖췄다. 유호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사라져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팔공산금호강 인근에서 거처한 채응린곽재겸은 조선 중·후기 대구를 대표하는 유학자였다. 따라서 채응린곽재겸을 제향한 유호서원은 조선시대 대구의 유학자 및 임진왜란 의병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며, 복원의 필요성이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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