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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886
한자 浮圖庵
영어공식명칭 Budoam Herimitag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58년연표보기 - 부도암 창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790년 - 부도암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60년 - 부도암 중창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5월 12일 - 부도암부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4월 20일 - 동화사부도암신중탱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
최초 건립지 부도암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산35]
현 소재지 부도암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산35]지도보기
성격 사찰|암자
창건자 도오대사
전화 053-982-0210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암자.

[건립 경위 및 변천]

부도암은 조선시대 1658년(효종 9) 도오(道悟)가 창건하였다. 1790년(정조 14) 춘파(春坡)가 중수하였다. 부도암에는 1955년의 불교계 정화 이전까지는 대처승이 거주하였다. 정화 이후 비구니들이 인수하여 참선 도량으로 만들었으며, 원래 개울 건너 서편 산기슭 12기의 부도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여 1960년에 완전 개축하였다. 1980년 동안거(冬安居)까지 계속되어온 부도암 선방(禪房)은 1981년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다가 그 후 다시 재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841년(헌종 7)에 쓰여진 『양간록(樑間錄)』과 함께 염불암(念佛庵)에서 발견된 고문서에는 당시 부도암에 72인 승려가 있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동화사의 부속 암자 중 규모가 가장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부도암동화사에서 북쪽으로 600m 정도 올라가면 있는데, 좁은 대지에 높은 석축을 쌓아 사역(寺域)을 조성하였다. 돌계단을 올라 입구에 서면 ‘부도암’ 현판을 단 인법당(因法堂)이 있고, 그 오른쪽 뒤로 수선당(修禪堂)과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인법당은 정면 8칸, 측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자 모양으로 오른쪽이 앞으로 조금 돌출한 모양이다. 수선당은 선방으로 정면 6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이고, 관음전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관음전에는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8호인 「동화사 부도암 신중탱(桐華寺 浮屠庵 神衆幀)」이 있다. 수선당 앞쪽 한 단 아래에 요사(寮舍)인 무애당(無碍堂)이 있는데, 무애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의 2층 누각으로 1층은 공양간이고, 2층은 승려들의 생활 공간이다. 그리고 부도암 입구에서 우측 길로 가다가 양진암염불암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염불암 쪽으로 조금만 가면 오른쪽 기슭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인 부도암 부도(浮屠庵 浮屠)가 있다.

[관련 문화재]

부도암에는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점이 있는데, 문화재자료 제34호인 동화사 부도암 부도와 제38호인 「동화사 부도암 신중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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