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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328
한자 東村飛行場
영어공식명칭 Dongchon Airfield
이칭/별칭 대구비행장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공항로 221[지저동 400-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37년 1월연표보기 - 동촌비행장 개장
최초 설립지 동촌비행장 - 대구광역시 동구 공항로 221[지저동 400-5]
현 소재지 대구국제공항 - 대구광역시 동구 공항로 221[지저동 400-5]지도보기
성격 시설

[정의]

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 일대에 건설된 비행장.

[건립 경위]

1931년 대구부의 도시계획에 따라 현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 일대를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에 편입해 비행장 건설을 계획하였고, 1930년대 초 대구에도 국제 항공로의 비행장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대구비행장 설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아무런 활동 없이 지내다가 1933년 8월 8일 대구공회당에서 대구비행장 설치를 위한 기성회의 임시총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임원 선거가 진행되었다. 회장에 오쿠라[小倉武之助], 부회장에 한익동 등이 선정되었다. 그 뒤 1935년부터 비행장 설치 예산으로 17만원을 예상하고, 자금 확보에 나섰다. 동시에 비행장 위치 선정을 놓고 대구 인근 여러 곳을 심의했으나 최종적으로 동촌이 선정되었다. 그렇지만 대구비행장 예정지로 선정된 동촌 일대는 대구 인근의 중요 농업지대였다. 또한 대구비행장 예정지에는 1931년에 준공된 해안수리조합이 운영되고 있었다. 대구비행장 건설이 추진되면서 조합의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비행장 건설에 편입될 부지가 해안수리조합 전체 면적 991,736㎡[30만 평]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462,810㎡[14만 평]이었다. 그에 따라 비행장이 건설되면 수리조합의 관개 혜택 면적이 크게 축소되어 수리조합으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게 되었다. 1935년 8월 무렵 대구비행장 설치가 거의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총경비 약 26만원에 14만 평 정도의 부지로 건설한다는 것이다. 또 대구비행장 건설과 함께 대구항공무전국 발신소 및 수신소의 건설도 추진되었다. 1937년 1월 31일 동촌비행장은 개장을 했다.

[변천]

동촌비행장은 일제강점기 조선 내 국제항공로의 주요 공항이 됨과 동시에 조선, 일본, 만주를 연결하는 거점공항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1954년 동촌비행장의 일부를 민간공항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1954년 대구와 서울 항로를 개설하였다. 1964년 4월 부산비행장 대구출장소가 설치되고, 대구와 서울 간 국내선이 취항하였다. 1990년 한국공항공단 대구지사가 설립되었다. 1991년 정부는 동촌비행장을 국제공항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군용기를 예천비행장으로 분산시키는 방안도 검토하였다. 1996년 대구공항에 국제선 정기노선 취항하였다. 2002년 3월 한국공항공사 대구지사가 설립되었다.

[구성]

동촌비행장은 현재 공군 11전투비행단의 K-2 군사비행장과 국제선과 국내선이 동시 운영되는 대구공항으로 통합되어있다.

[현황]

지금 동촌비행장은 대한민국 공군 11전투비행단의 군사비행장과 국제선과 국내선이 운행되고 있는 민간의 대구공항이 있다. 2007년부터 공군비행장 이전 운동이 시작되어 2015년에 본격되고 있다. 2017년 대구광역시 동구의회에 대구공항통합이전추진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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