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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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西區] |
영어공식명칭 | Beteul-norae|Weaver's Song |
이칭/별칭 | 「베틀소리」,「베틀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길쌈노동요.
대구광역시에서 전성되는 「베틀노래」는 베를 짜는 길쌈을 할 때 고되고 단조로운 노동의 고통을 덜고자 부르는 길쌈노동요이다. 서사민요적 색채가 강하며, 사설의 내용은 주로 베틀 구조와 길쌈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베틀소리」, 「베틀가」라고도 일컬어진다.
1987년 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6월 19일 대구직할시 서구 성서3동 갈산마을에서 가창자 도막량으로부터 「베틀노래」[달서구]가 채록되었다. 다만, 당시 채록 장소에 관한 기록이 애매한 점이 있어 정확한 현재 위치는 특정하기가 어렵고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속할 것으로 추정된다.
「베틀노래」[달서구]는 독창 형식으로 부른다.
「베틀노래」는 일반적으로 베틀의 여러 부분을 의인화하여 노래하다가, 멀리 떠난 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구조이다. 갈산마을에서 채록된 「베틀노래」[달서구]도 유사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사설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라 무산 선녀/ 지하에 내려와서/ 사방을 둘러보니/ 앞다리는 높이 놓고/ 뒷다리는 낮게 놓고/ 가리세랴 지른 양은/ 성틀에 앉은 굿도/ 부틔라 띠는 양은/ 무지개를 두른 듯고/ 바대집의 치는 소리/ 백옥산천 깊은 골에/ 벼락 치는 소리 듯고/ 북나드는 지상은/ 청학이 알을 안고/ 백옥 간에 나는 듯고/ 칫장이라 꼽는 양은/ 동에 동산 무지개가/ 서에 서산 뻗인 듯고/ 눌굴대라 앉은 양은/ 우리 애비 안즌 듯고/ 잉엣대라 삼형제는/ 백만 군사 거느린 듯/ 용두머리 우는 양은/ 어린애기 우는 듯고/ 도두마리 지는 양은/ 벼락 치는 소리 듯고/ 나픈마리 나부손은/ 양주리기 잔들고/ 백노강에 희롱한다/ 뱁대거라 지는 양은/ 구시월 시단풍에/ 떡가락잎 지은 듯고/ 절로 굽은 신나무는/ 헌신짹이 목을 메고/ 지도방도 나드는 듯/ 대정도 나드는 듯/ 낮에 짜면 일광단/ 밤에 짜면 월광단이요/ 일광단 월광단 다 짜 가지고/ 앞냇물에 아시 씻고/ 뒷냇물에 휭거서 뒤여 가지고/ 서울 가신 선배님/ 도독 한 벌 지어서/ 줄대 끝에 거러 두고/ 나며 보고 들며 보고/ 서울 갔던 선배님은/ 우리 서보 안 오시뇨/ 오기사 오던마는/ 칠성판에 실려 오네/ 비녀 빼여 남게 꼽고/ 댕기 풀어 남게 걸고/ 아 사랑 낭게 불어서여/ 아사지게 슲이 우네.”
현재는 「베틀노래」는 베틀로 베를 짜지 않기에 노동요로서 불리는 현장이 사라졌다. 다만, 전통문화 보존을 위하여 활동하는 문화단체에서 「베틀노래」를 부르거나 가르치는 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대구광역시 서구의 「베틀노래」[달서구]는 지역에서 불린 「베틀노래」의 다양한 사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