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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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遠馨 |
영어음역 | Gang Wonhyeog |
이칭/별칭 | 성윤(聖允),혜사(蕙社)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장영복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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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상지] |
성별 | 남 |
생년 | 1862년![]() |
몰년 | 1914년![]() |
본관 | 진주 |
대표관직 | 홍문관 시강(侍講)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을 진주(晉州). 자는 성윤(聖允), 호는 혜사(蕙社). 백하(白下) 강의영(姜宜英)의 아들이다.
1890년(고종 27)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를 제수 받았고 그 후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1905년(광무 5) 1월 동지들과 일본 공사관에 공개장을 보내어 불법을 지적하고 규탄하였다. 전찬정(前贊政) 최익현(崔益鉉) 외 2명을 일본 헌병이 불법 체포하였을 때 일본군사령부에 투서로서 항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3도 유생연명소를 2차로 올리다 체포되어 45일 만에 출옥하였다. 얼마 되지 아니하여 홍문관 시강(侍講)에 임명되었으며, 봉상시전사(奉常寺典司), 비서랑(秘書郞) 등을 지나다가 귀향하였다. 국권 피탈 후 상경하여 국권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1914년 객지에서 사망하였다.
선생의 유지(遺志)를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 기념비를 세웠는데 유석우가 비문을 지었고, 이기윤과 최상엽이 글씨를 썼다. 1980년에 국권침탈조약 반대의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