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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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洛里林龍相生家址 |
이칭/별칭 | 수락리 임용상 생가터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49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재관 |
훼손 시기/일시 | 1950년 - 수락리 임용상 생가지 6.25전쟁으로 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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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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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생가지|생가터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에 있는 개항기 의병장 임용상이 태어난 집터.
수락리 임용상 생가지는 일제의 침탈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독립유공자 임용상(林龍相)[1877~1954]이 태어난 집터이다. 임용상의 자는 충서(忠瑞), 호는 중호(中虎)이다. 을사늑약 체결 후 영덕군(盈德郡) 청련사(靑蓮寺)에서 의병을 모아 동해창의군(東海倡義軍)을 조직하고, 대장으로 추대되어 영덕, 청하(淸河), 강구(江口)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09년 6월 울산(蔚山), 언양(彦陽), 양산(梁山)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10년 출옥하였다. 출옥 후 산남의진을 재정비하고 청송, 의성(義城)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였으나, 다시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현재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생가의 건립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임용상은 수락리의 생가에서 1877년(고종 14) 임효수(林孝洙)의 아들로 태어났다.
현서면사무소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9.2㎞ 정도 이동한 후, 월정교차로에서 지방도908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8.8㎞ 가면 도로 좌측편에 수락리 임용상 생가지가 있다.
수락리 임용상의 생가는 6·25전쟁 때 불타버려 형태를 알 수 없다.
수락리 임용상 생가는 6·25전쟁 때 소실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수락리 임용상 생가지는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다른 민가가 있다. 한편, 수락리 임용상 생가지에서 동남쪽으로 20m 떨어진 지점에 생가였음을 알려주는 ‘중호임용상의사유허비(中虎林龍相義士遺墟碑)’가 건립되어 있다. 이 비석은 1978년 건립된 것으로 비신의 높이는 170㎝ 정도이다.
수락리 임용상의 생가는 6.25전쟁으로 소실되었지만, 임용상 유허비가 세워져 있어 임용상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뜻을 기릴 수 있는 장소로서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