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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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琅城面 官井里 高靈 申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형수 |
전구간 | 낭성면 관정리 고령 신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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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낭성면 관정리 고령 신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
성격 |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에 있는 고령 신씨 영성군파의 집성촌.
고령 신씨(高靈 申氏) 영성군파(靈城君派)는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아들 영성군 신형(申泂)[1449~1487]을 파조로 모신다. 신형의 아들인 10세 신광윤(申光潤)[1468~1554]이 갑자사화에 연좌되었다가 1506년 반정으로 풀려나자 북이면 용계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용계리] 모애마을에 내려와 살았고, 후에 낭성면 관정리[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머그미로 이거하였다. 신광윤의 후손들은 관정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면서 낭성면은 물론이고 인근의 가덕면과 미원면으로 퍼져 나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예로부터 낭산과 가덕 등 상당산 동쪽 일대에 세거하는 고령 신씨를 가리켜 산동 신씨(山東 申氏)라 부르기도 하였다.
영조 대 후반인 1750~1776년 관기리(官基里)와 묵정리(墨井里)가 조성되었고, 1914년 관기리, 묵정리, 활산리(活山里), 호동(浩洞), 감당리(甘棠里) 일부를 병합하여 관기리와 묵정리의 이름을 따서 ‘관정리’라 명명하였다. 관정1리에는 과거 낭성면사무소가 있던 활미[활산(活山)], 재실(齋室), 담안[장내(墻內)]이 있으며 관정2리에는 머그미[머구미, 먹우물, 묵정], 장자불[장자마을], 절골[사곡(寺谷)] 등의 마을이 있다. 이 중 머그미는 입향조 신광윤이 정착한 마을인데, 장자불 뒷산의 우물이 검은색을 띠고 있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한자로는 묵정이라 한다.
관정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는 하천에 의한 충적평야가 있다. 낭성면을 동서로 관통하는 감천을 경계 삼아 북쪽의 관정1리와 남쪽의 관정2리로 구분된다. 관정1리는 북쪽에 산을 등진 채 남쪽으로 감천을 바라보고 있어서 들판이 펼쳐지지만, 관정2리는 절골에서 흐르는 개울이 형성한 좁은 골짜기에 마을이 길쭉하게 들어서 있다.
고령 신씨는 2010년대 초반 낭성면 일대에만 172가구에 달하였다. 관정리는 주민 대부분이 고령 신씨이고 집성촌의 모습이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