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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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雙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10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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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0일 - 조쌍동 입장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79년 2월 5일![]()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조쌍동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조쌍동 출생지 -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14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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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입장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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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쌍동(曺雙童)[1901~1979]은 1901년 10월 20일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14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사립 광명 학교 학생으로서 1919년 입장 장터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입장 장터 만세 운동은 직산 광산 광부였던 안시봉과 광명 학교 교사였던 강기형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10일경 광명 학교 내에서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3월 17일 경 재차 모의하였다.
3월 20일 오전 10시경 안시봉과 강기형은 학생 수십 명과 더불어 직산 금광의 광부 및 인근 주민 약 70여 명을 인솔하고 양대리 시장에 도착하였다. 조쌍동 역시 이 중 한 명이었다. 안시봉이 자기 집에서 제작한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시장을 누비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시위 행렬은 양대리 시장에서 3㎞ 떨어진 하장리(下場里)의 입장 시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양대리 시장에서는 70여 명이었으나, 입장 시장에서는 600~700명으로 행렬이 늘어났다.
조쌍동은 이 사건으로 징역 6개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9년 2월 5일 사망하였다.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