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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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少悌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 11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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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이소제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이소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가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으로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소제(李少悌)[1875~1919]는 1875년 11월 7일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에서 출생하였다.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로, 1919년에 딸 유관순과 더불어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적극 계몽하였다.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일본 군경들의 기총 난사로 순국하였다.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이며,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의 주역인 유중권(柳重權)의 아내이다. 아들은 유우석(柳愚錫)이다.
이소제는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葛田面)[지금의 천안시 병천(竝川)]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시위군중 앞에서 주모자 중의 한 명인 조인원(趙仁元)이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장터는 독립 만세 소리로 온 천지가 진동하였다.
이소제는 이때 남편 유중권, 딸 유관순과 함께 시위 군중에 휩싸여 헌병 주재소로 달려가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일본 헌병들이 총검으로 선두에 선 유관순을 때리고 옆구리를 찔렀다. 헌병은 상처를 입은 유관순의 머리채를 잡고 주재소로 끌고 갔다. 이를 본 이소제는 유중권과 함께 끌려가는 딸을 뒤따라가며 필사적으로 만세를 외쳤다. 헌병이 다시 총검으로 유중권을 찔러 빈사 상태에 빠뜨렸고, 유관순은 그 틈에 헌병의 손아귀에서 풀려나 피신할 수 있었다.
이소제는 남편의 죽음을 보고 더욱 열렬히 독립 만세를 부르며 항거했고, 무도한 일본 경찰이 총기를 난사하여 남편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 아우내 만세 시위에서는 19명이 목숨을 잃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