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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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安骨浦鎭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548|64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용 |
건립 시기/일시 | 149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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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진해 안골포진성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548|안골동 647![]() |
성격 | 산성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에 있는 야산의 능선축을 따라 축성된 조선 시대 성곽.
진해 안골포진성은 안골 마을 배후의 야산의 능선축을 따라 축성한 조선 시대 성이다. 안골포진은 1462년(세조 8) 병조의 건의에 따라 김해 가망포에서 옮겨 온 만호진이 있던 곳이다. 수군의 방어 원칙이던 ‘선상수어(船上守禦)’에서 한발 물러서 남해안 연안 일대에 보루를 설치하기로 결정하면서 제포진성과 안골포진성의 축성이 논의되었다. 1490년(성종 21) 경상도의 적량성·사량성·지세포성·영등포성 등과 함께 만들어졌으며, 둘레 1,714척[약 520m], 너비 13척[약 4m]의 규모이다.
『영남진지』의 「안골진지」에 따르면 성내에는 전우·동헌·아사·군관청·진무청·통인방·사령방·교사청·포수청·군기고·집물고·화포고·경파루·해반루·어변정 등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안의 정상부와 하단부에 건물지를 배치하여 조선시대 해안 방어를 담당하였던 진성의 구조적인 여러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해 안골포진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548과 안골동 647 일원에 위치한다.
현재 성의 하단부 마을 쪽은 민가가 들어서 있어 원형이 훼손되었지만 배후의 야산에는 정상부 능선을 따라 자연대석으로 이중 기단으로 구축한 성벽이 남아 있다. 성 안은 계단식 밭으로 개간되어 있으며, 지금은 서문지와 남문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 동서남북 모두에 옹성형 문지를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의 좌우에는 정방형 곡성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성 밖에는 해자를 조성하였다. 남동쪽의 자연 경사면에는 성벽 외곽으로 돌려져 있는 해자 시설이 확인되는데 현재는 산길로 이용되고 있다.
진해 안골포진성은 대부분 파괴되고 남벽 일부와 서벽의 기단 일부만 남아 있는데 아마도 임진왜란 때 성이 함락되고 인근에 왜성을 축조할 때 석축을 헐어내어 성석(城石)을 옮겨 이용한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