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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4208
한자 金水賢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성진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9년 7월 22일연표보기 - 금수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0년 - 권영호 일본 도쿄 음악 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금수현 녹조훈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금수현 영필하모니 이사장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금수현 외솔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92년 8월 31일연표보기 - 금수현 사망
출생지 김해시 - 경남 김해시 대저면[현재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활동지 경상남도
성격 음악가
성별
본관 김녕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에 걸쳐 경상남도에서 활동한 음악가.

[가계]

본명은 김수현(金守賢)이고, 본관은 김녕 김씨(金寧 金氏), 아호는 낙초(洛初)이다. 20대 시절에 순 한글 이름인 금수현으로 개명하였으며, 지휘자 금난새가 그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금수현(金守賢)[1919~1992]은 1940년에 일본의 도쿄 음악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쇼치쿠 가극단에서 근무하였으며, 1942년부터 동래 여자 중학교 교사, 1945년 경남 여자 중학교 교감을 역임하였다. 1947년에는 경남 도립극장장으로 활동했으며, 1953년 경남 여자 중학교 교장, 1956년 통영 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같은 해 문교부 편수관이 되어 음악 교과서를 만드는 데 주력하였다. 1965년에는 ‘영필 하모니’를 창단하여 젊은이들을 위한 교향악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안골 왜성 바로 밑자락 신항만 입구 앞 언덕바지에 5,580㎡ 면적의 ‘안골 음악촌’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곳은 금수현이 1979년 5월에 이 부지를 구매하여 10년간 건축해 ‘안골 음악촌’이라 명명하고 운영하다가 1992년 8월 31일 그가 사망함으로써 운영이 중단되었다. 현재까지 ‘금수현’의 문패가 남아 있다.

[저술 및 작품]

1947년 경상남도 도립극장장 재임시 오페라 「피리와 칼」이라는 경가극 형태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전에 발표한 가곡 「그네」는 민족적인 선율에 의한 작품으로 대중성을 띠고 널리 알려져 있다. 1970년부터는 음악 전문지 『월간 음악』을 발간하여 음악언론의 일각을 담당하였다. 저서로는 『가곡집』Ⅰ·Ⅱ, 『표준 음악 사전』, 『음악·멋·말』 등이 있으며, 많은 음악 수필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진해의 안골 음악촌에서 작사·작곡한 가곡이 「안골포」인데, 지금은 신항만 건설로 앞바다가 매립되어 풍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 풍경과 역사를 「안골포」는 너무나 잘 전하고 있다. 「안골포」는 “안골포성” “거북선” “그 함성” 등 임진왜란 당시 안골포 해전의 역사를 전하고 있으며, “바다가 호수인가 호수가 바다인가” “바다가 하늘인가 하늘이 바다인가” 등 안골만 일대의 풍경을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안골포

금수현 작사 작곡

안골포 언덕에서 가덕도 바라보니

바다가 호수인가 호수가 바다인가

갈매기 날아가네 울면서 날아가네

고깃배 거북선인 듯 그 옛날이 이몽지다

안골포 성위에서 수평선 바라보니

바다가 하늘인가 하늘이 바다인가

구림이 흘러가네 바람을 헤어가네

옛님도 가슴 조인 듯 그 함성이 들려 온다

[상훈과 추모]

1960년에 녹조훈장과 1981년에 외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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