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132 |
---|---|
한자 | 金鎬源 |
영어음역 | Gim Howon |
이칭/별칭 | 내경(乃京),석우(石愚)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민긍기 |
성격 | 선비 |
---|---|
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
![]() |
성별 | 남 |
생년 | 1840년![]() |
몰년 | 1923년![]() |
본관 | 상산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선비.
김호원의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내경(乃京). 호는 석우(石愚). 동산(東山) 김명윤(金命胤)[1565~1609]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종두(金宗斗)[?~1841]이고,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1875]로 안국권(安國權)의 딸이다.
김호원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께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어머니의 명에 따라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두 번 다시 과장(科場)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1886년(고종 23) 만휴(晩休) 김만현(金萬鉉)[1820~1902]을 따라 관해정(觀海亭)을 중창하여 인재 교육에 힘썼고, 1905년에는 일인들이 문묘(文廟) 뒤로 철도를 개설하자 시골 선비들을 거느리고 항거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경술국치를 당하여 며칠 동안 먹지 않고 두문불출하였다고 전한다. 저서로 『석우유집(石愚遺集)』이 전한다.
묘소는 원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있었으나 1926년 백월산(白月山)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