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장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232
한자 場市
영어음역 Jangsi
영어의미역 marketplace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상현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5일마다 열리는 사설 시장.

[개설]

조선시대의 장시는 어용상(御用商)이나 시전(市廛)과 구별되는 시장으로, 별다른 시설이 없는 일정한 장소에 상인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모여 서로 교역하는 곳을 말한다. 이들 장시는 대부분 고장의 치소(治所)가 있었던 읍성 주변이나 역(驛) 주변, 그 외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교통의 요지에서 열렸다. 주로 5일을 주기로 하여 섰는데 농산물, 어산물, 수공업제품 등이 유통되었다.『창원부읍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창원의 장시로는 읍장(邑場), 자여장(自如場), 신촌장(新村場), 안민장(安民場), 모삼장(毛三場) 등이다.

[변천]

창원읍장은 전통시대 창원의 장시를 대표하는 곳이다. 창원도호부의 치소가 있었던 읍성 안에는 관청에 딸린 사창(司倉)·진창(賑倉)·영송창(迎送倉) 등 각종의 창고들이 있었고, 수급되는 물품이 다양하였던 만큼 유통되는 물건도 각양각색이었다. 주로 2일과 7일에 열렸는데 일제강점기에 창원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었고, 1937년에 편찬된 『교남지(嶠南誌)』에는 ‘창원시장(昌原市場)’으로 등장한다. 창원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소답동(召畓洞)에 있다 하여 ‘소답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역원(驛院)은 인구의 이동과 물류의 유통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현장이었다. 그런 만큼 역원은 장시의 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여장과 안민장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자여장은 자여도(自如道)의 본역이 있던 자여역 주변에서 1일과 6일에 열렸다. 자여장은 역제의 폐지와 함께 그 기능이 급속히 약해지면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자여장이 섰던 곳은 현재의 동읍 송정리 일대이다.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현재 봉산마을과 송정마을 사이에 있는 도랑가를 중심으로 장이 섰다고 한다.

안민장은 창원도호부 남쪽, 현재의 성주동에 속하는 안민역 주변에 1일과 6일에 섰던 장이다. 『영남역지(嶺南驛誌)』에는 안민역자여역의 서남쪽 30리 지점에 있는 말 6필 위전답 39결 22부 규모의 역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안민령을 넘어 오늘의 진해시와 연결되었는데 웅천의 보평역과 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통 물류 중에는 어산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민장 역시 역참제의 폐지와 함께 쇠퇴하고 말았다.

그 외에 신촌장과 모삼장이 있었다. 신촌장창원시 북면 신촌리에서 열린 장이다.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30리 가량 거리인데 4일과 9일에 열렸다. 모삼장은 창원도호부 남쪽에서 섰는데 뒤에 완암(完巖)으로 옮겨져 열렸다. 완암장은 그 뒤 상남면사무소가 있던 현재의 상남동으로 옮겨지면서 상남장(上南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95년 편찬의 『영남읍지(嶺南邑誌)』에 상남장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상남장은 그 이후 기능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상남장은 지금도 4일과 9일에 장이 서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