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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69
한자 賑倉
영어의미역 Jinchang Warehous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조선 전기
시행연도/일시 조선 전기
폐지연도/일시 조선 말기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진휼미 보관 창고.

[개설]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운영되었는데, 진창(賑倉)도 그 중의 하나로서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는 생산량의 감소와 냉해 등 자연재해로 인하여 그 해의 작황이 좋지 않아 식량 사정이 나쁠 때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흉황과 기근에 따른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곤궁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은 고구려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창원도호부 내에는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필요한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인 진창을 설치 운영하였다.

[관련기록]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 『영남읍지(嶺南邑誌)』, 『창원읍지(昌原邑誌)』 등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창원부읍지』에 따르면, 진창에 보관된 물품은 벼가 2,357섬 2말 1되 8홉이었고, 쌀이 1,507섬 5말 1되이었다. 그리고 콩이 225섬 6말 7되 3홉, 메밀이 21섬 5말 4되 3홉, 보리가 682섬 3말 1되 1홉이었다.

[변천]

1895년에 발간된 『영남읍지』에 의하면, 1832년에 편찬된 『창원부읍지』의 내용과 비교하여 보관된 물품과 수량에서 변화가 있었다. 보관된 물품에서 벼는 1,203섬 4말 4홉 9줌이었고, 쌀이 3,274섬 3말 5되 1홉 9줌이었다. 그리고 콩이 278섬 6말 4되 5홉 1줌이었고, 겉보리[皮牟]가 1,257섬 4말 1되 3홉 6줌이었다. 1899년에 편찬된 『창원읍지』에는 진창이 폐지된 것으로 나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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