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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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場洞古墳 |
영어의미역 | Tomb Sites of Chojang-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3가 38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홍보식 |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
초장동 고분은 해발 266m의 천마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의 능선에 위치한다.
1991년 6월 10일 주택 정화조 공사 도중에 유물이 발견되어 무덤이 알려지게 되었고,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쪼갠 돌로 쌓은 무덤 일부와 유물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규모는 알 수 있다. 깬 돌로 쌓은 구덩식 돌널무덤으로, 석곽의 규모는 길이 175㎝, 잔존 너비 75㎝, 깊이 47㎝로 소형에 해당한다. 남아 있는 바닥에는 10㎝ 크기의 잡석을 깔았다.
유물은 석곽의 남쪽 단벽 쪽에서 출토되었는데, 굽다리 접시[고배(高杯)] 3점, 뚜껑 3점,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短頸壺)] 1점, 파수부 연질 옹(把手附軟質甕) 1점, 굽다리 긴 목 항아리[대부 장경호(臺附長頸壺)] 1점 등 모두 9점이다. 고배는 기벽이 얇고, 다리 끝이 위로 반전하는 특징을 보인다. 뚜껑은 단추형 손잡이가 달렸고, 아가리가 수직으로 뻗는다. 이와 같은 특징의 고배는 6세기 전반의 신라 고배의 특징이다.
개인 주택의 정화조 공사를 하면서 확인된 고분은 이미 사라졌고, 주변의 주택이 들어선 지하에 다수의 고분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에 잡석을 깔고 깬 돌로 석곽을 만든 무덤 구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의 신라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된다. 석곽의 규모가 2m 이하의 소형이고, 출토 유물도 소량인 점으로 볼 때, 피지배층 또는 하위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덤이 확인된 초장동 일대는 독립된 구릉이 아니라 경사가 심한 사면이어서 규모가 큰 무덤은 조영되지 않고, 주로 소형 묘가 조영된 하위 신분층의 집단 묘로 추정된다. 초장동 고분과 같은 시기의 하위 신분층의 고분군으로는 괴정동 고분군과 부산 오륜대 고분군 등이 있다. 초장동 고분을 조영한 집단은 당시 부산의 중심 집단인 연산동 고분군을 조영한 집단의 지배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