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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를 노래한 고전 문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73
한자 海雲臺-古典文學
영어의미역 Classical Literature Singing Haeunda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집필자 이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사항 시기/일시 고려 후기 - 「해운대(海雲臺)」
특기사항 시기/일시 조선 전기 - 「해운대유감(海雲臺有感)」
특기사항 시기/일시 조선 전기 - 「류해운대(遊海雲臺)」
특기사항 시기/일시 조선 후기 - 「해운쌍유도발(海雲雙遊圖跋)」
관련 장소 해운대, 동백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정의]

고려 후기에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해운대를 대상으로 지은 한시나 산문의 문학 작품.

[개설]

‘해운대(海雲臺)’라는 명칭은 신라 시대 문학가 최치원(崔致遠)의 자(字) ‘해운(海雲)’에서 비롯되었다. 최치원은 방랑하던 중 부산 해운대에 들러 대(臺)를 쌓고 ‘해운대’라는 석 자를 바위에 새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와 조선의 많은 문인은 그를 기념하여 시문을 남겼고, 이것이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고전 문학이 되었다. 해운대를 노래한 고전 문학 가운데 대표적 한시로는 고려 후기의 문인 정포(鄭誧)[1309~1345]를 비롯하여 조선 초기의 최항(崔恒)[1409~1474], 권반(權攀)[1419~1472], 서거정(徐居正)[1420~1488], 성현(成俔)[1439~1504], 유호인(兪好仁)[1445~1494] 등의 시, 조선 중기의 김안국(金安國)[1478~1543], 정사룡(鄭士龍)[1491~1570], 주세붕(周世鵬)[1495~1554], 고경명(高敬命)[1533~1592] 등의 시, 조선 후기의 신오(辛澳)[?~1636] 조수삼(趙秀三)[1762~1849], 이병헌 등의 시를 들 수 있다. 대표적 산문으로는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해운대에 노닐며[遊海雲臺]」와 신유한(申維翰)[1681~?]의 「해운쌍유도발(海雲雙遊圖跋)」 등이 있다.

[해운대를 노래한 한시]

해운대를 노래한 한시는 70여 수가 넘는다. 시의 내용은 첫째 해운대 주변의 풍경과 해운대의 역사적 자취를 노래한 시, 둘째 정확한 죽음의 경위를 알 수 없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읊은 시, 셋째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에 대한 전설과 동해(東海)의 영주산·방장산·봉래산 등에 신선이 산다는 도가적 사상과 관련하여 묘사한 시, 넷째 해운대동해를 바라보며 느끼는 정서를 표출한 시 등으로 나누어진다.

1. 해운대 풍경과 역사적 자취를 노래한 시

문헌 기록상 최초로 해운대를 노래한 고려 후기의 문인 정포의 시가 대표적이다. 그는 「해운대(海雲臺)」라는 시에서 “황폐한 대는 휑하니 터도 없지만, 여전히 해운이란 이름을 말하네[荒臺漫無址, 猶說海雲名].”라며 당시 해운대의 정경을 묘사하였다. 이외에 해운대의 정경을 노래한 시에는 조선 전기의 문인 성현의 「해운대」,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해운대」, 신오「해운대」 등이 있다.

2. 최치원을 신선으로 읊은 시

1608년(선조 41)에 동래 부사로 왔던 이안눌(李安訥)[1571~1637]이 읊은 「해운대」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시에서 최치원이 “신선의 수레를 타고 하늘로 갔다[飆輪一去幾千載]”고 노래했다. 이외에 최치원을 신선으로 묘사한 시에는 조선 시대 정사룡「해운대」, 정권의 「해운대」 등이 있다.

3. 도가적 사상과 관련된 시

신선 전설과 동해의 영주산·방장산·봉래산 등 삼신산에 신선이 산다는 도가적 사상과 관련된 시 중에서 이를 대표하는 작품은 고경명의 「해운대유감(海雲臺有感)」이다. 그는 이 시에서 해운대의 절경을 동해의 신선 세계와 연결하여 상상하고 있다. 이외에 서거정의 「해운대행송유사문지동래(海雲臺行送柳斯文之東萊)」, 조위의 「동래 해운대」, 강혼의 「해운대차운(海雲臺次韻)」 등도 여기에 속한다.

4. 해운대·동해에서 느끼는 정서를 표출한 시

해운대동해를 바라보며 느끼는 정서를 표출한 작품은 최항, 권반, 김극성(金克成), 김안국, 김석주(金錫冑), 조수삼 등의 시가 대표적이다. 참고로 최초로 해운대를 노래한 고려 후기의 문인 정포의 시를 제시한다.

낙일봉승화(落日逢僧話)[저물녘에 스님 만나 얘기하다가]

춘교신마행(春郊信馬行)[말 가는대로 봄 들녘을 간다]

연소촌항영(烟消村巷永)[안개 걷힌 시골 마을 길게 이어지고]

풍연해파평(風軟海波平)[여린 바람에 파도는 잔잔하다]

노수의암립(老樹依巖立)[늙은 나무는 바위에 기대서고]

장송옹도영(長松擁道迎)[큰 소나무는 길을 감싸 둘렀네]

황대만무지(荒臺漫無地)[황폐한 대는 휑하니 터도 없는데]

유설해운명(猶說海雲名)[그래도 해운이란 이름만은 말하네].

[해운대를 노래한 고전 산문]

해운대를 노래한 고전 산문은 남효온이 1487년(성종 18)에 지은 「해운대에 노닐며」와 신유한의 「해운쌍유도발」이 있다. 남효온은 모친의 명을 받아 옛 고향인 의령에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5일 일정으로 동래현 해운대를 방문하고 이 글을 썼다. 남효온의 산문은 최치원의 행적→ 해운대의 절경→ 해운대 등을 방문하게 된 경위→ 관리와 선비들에 대한 경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유한의 「해운쌍유도발」은 「해운쌍유도(海雲雙遊圖)[두 사람이 해운대에서 노닐다]」라는 그림에 대한 발문이다. 「해운쌍유도」는 홍수이(洪壽爾)가 선성(宣城)의 사또와 5일간 해운대에서 노닌 것을 화공(畵工)에게 그리게 한 것으로, 발문을 신유한에게 부탁하였다. 신유한의 발문은 그림을 보고 작성되었다. 전반부는 해운대의 절경을 동해에 있다는 봉래산과 연결하여 노래하였고, 후반부는 그림의 내력과 발문을 쓰게 된 연유를 적었다.

[의의와 평가]

해운대를 노래한 한시와 산문들은 단순히 해운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우했던 시인 최치원을 추억하고, 해운대를 방문했던 수많은 문인 자신들의 정서를 표출하는 등 부산 지역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 문학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고전 문학의 정신은 현대에도 이어져 현대 시인 이은상(李殷相)은 「해운대에서」라는 글을 짓기도 하였다. 최치원을 그리며 인생의 유한(有限)함과 자연의 무한(無限)함을 노래한 이은상의 글은 대리석에 새겨져서 현재 해운대 동백섬 최치원 유적지에 최치원 동상의 배경으로 장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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