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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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船上嘆 |
영어의미역 | Lament on a Boa by Bak Inr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초량동|수영구 수영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속영 |
[정의]
1605년 박인로가 동래의 통주사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비애와 평화를 추구하는 심정을 노래한 가사.
[개설]
「선상탄」은 임진왜란에 직접 참여하여 민족의 수난을 뼈저리게 겪기도 했던 박인로(朴仁老)[1561~1642]가 전란 후 1605년(선조 38) 전선(戰船)을 관장하는 통주사(統舟師)로 부산에 부임하여, 왜적의 전진 기지인 대마도를 굽어보며 전쟁의 비애와 멸적의 각오, 그러면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심정을 노래한 전쟁 가사이다. 「선상탄」은 박인로의 문집인 『노계집(蘆溪集)』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선상탄」은 총 144구로 서사·본사·결사로 구성되어 있다. 서사는 왕명을 받들어 부임하게 된 경위와 각오를, 본사는 침략의 도구로 쓰였던 배에 대한 원망과 우국충정, 그리고 앞으로 닥칠 일본의 침략을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결사에서는 태평성대에 대한 기원을 서술하고 있다.
[내용]
「선상탄」의 내용은 크게 다섯 단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4구까지로 서사를 이루고 있는데, 부임하게 된 경위를 밝히고 대마도를 보며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을사(乙巳) 삼하(三夏)애 진동영(鎭東營)려오니”에서 작품의 지어진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진동영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을 뜻하는 것으로 줄여서 좌수영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중 전장에 직접 참여했던 박인로에게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작품의 기저를 이루는데 충분히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둘째 단락은 56구까지로, 침략의 도구인 배를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헌원씨(軒轅氏)[중국의 건국 신화에 나타나는 제왕]를 원망하고,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진시황이 파견한 서불(徐芾)[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부산 영도에 왔었다는 진나라의 신하]의 후손이 왜국에 퍼졌다는 전설을 가져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을 있게 한 진시황과 서불을 탓한다.
셋째 단락은 90구까지로, 풍류와 흥취를 즐겼던 과거의 배와 침략의 도구가 된 지금의 배를 대조시켜 평화의 도구인 배를 침략의 도구로 사용한 왜인의 비뚤어진 근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넷째 단락은 128구까지로, 쥐나 개와 같은 왜적의 무리를 추풍낙엽같이 무찌를 수 있다는 작자 자신의 기개와 기백을 토로하면서 일본을 이기자는 의지를 유감없이 펼친다.
다섯째 단락은 결사 부분으로 왜인들이 항복한다면 함께 생존해 갈 것과, 이로 인하여 태평스러운 시대가 오면 고깃배를 타고 즐기겠다는 기원을 담고 있다.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겠다는[降者不殺] 뜻을 강조하여 우리 민족의 평화주의 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일본과 공존할 뜻을 나타내었다.
[특징]
우리 민족에게 큰 상처를 남긴 임진왜란이 끝난 지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왜적의 전진 기지였던 대마도를 굽어보며 지어진 「선상탄」은 당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제목은 배 위에서의 탄식이라는 「선상탄」이지만, 작품은 감상에만 흐르지 않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적을 위압하는 기개 및 투지만만한 기백 등 전쟁 문학으로서의 기본 요건을 고루 갖추고 있어 전쟁 가사의 대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부산은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전쟁이 이루어졌으며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는 첫 관문이기에, 그들의 전진 기지인 대마도를 바라보며 표현된 대일 의식과 우리 민족의 평화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공존의 뜻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