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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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瓦質土器 |
영어의미역 | Grey Potte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박정욱 |
[정의]
부산광역시 지역에서 출토된 삼한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
[개설]
와질 토기(瓦質土器)는 삼한 시대(三韓時代)에 유행한 대표적인 토기로, 회색 위주의 회흑색·흑색·회백색 등의 색조를 띠고, 단단하기가 무른 기와[瓦質]와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 시대의 회청색 도질 토기에 비해 굽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경도가 약하여 흡수성이 강하며, 바탕흙은 매우 고운 진흙[粘土]을 사용하였다. 주로 삼한 시대 무덤의 부장용 토기로 사용되었으며, 출토 범위가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된다.
와질 토기의 기원은 앞 시대인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 문화에서 낙랑 지역의 한식(漢式) 제도술(製陶術)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재질의 토기 문화가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방가마[室窯], 회전판, 타날 수법(打捺手法) 등 신식 토기 제작 기술 문화가 한반도 남부에 정착하여 발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와질 토기는 일반적으로 고식(古式) 와질 토기와 신식(新式) 와질 토기로 구분된다. 고식은 기원전 1세기 중엽부터 주머니 호[小形甕]와 쇠 뿔 잡이 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 둥근 밑 항아리[圓低短頸壺] 등의 형태로 널무덤[木棺墓]에서 확인된다. 신식은 기원후 2세기 중·후반부터 나타나는데, 고식에 비해 형태가 다양해지고 소성도가 점차 향상되며 성형 및 정면 수법이 다양해진다. 대표 기종으로는 굽다리 목 긴 항아리[臺附長頸壺], 굽다리 곧은 입 항아리[臺附直壺口], 화로 모양 토기[爐形土器], 굽다리 접시[高杯], 오리 모양 토기[鴨形土器] 등이 있고, 주로 덧널무덤[木槨墓]에서 출토된다.
[부산 지역의 와질 토기]
부산 지역에서는 크게 생활 유적과 분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생활 유적에는 사적 제192호로 지정된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천로 319번길 60[낙민동 100-1번지]의 동래 패총(東萊貝塚)과 영도구 동삼동 하리 조도 조개더미가 대표적이다. 동래 패총에서 확인된 토기는 소성도에 따른 토기의 질(質)을 기준으로 연질(軟質)·와질·도질(陶質) 토기로 구성되는데, 이 중 와질 토기가 25%를 차지한다.
분묘 유적으로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142-1번지의 노포동 고분군과 구서동 유적, 부산 복천동 고분군, 온천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삼한 시대 대표 묘제인 널무덤[전기]과 덧널무덤[후기]에서 다양한 종류의 와질 토기가 발견되었다.
와질 토기를 비롯하여 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삼한 시대의 고고학적 자료는 당시 고대 사회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를 통해 초기 국가 단계의 지역 사회[집단]와 관련한 물적 네트워크(network)를 통한 생산과 유통의 경제 구조를 밝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포항·경주·울산 지역 등의 남부 동해안 지역 및 김해·창원·밀양·대구 등의 낙동강 내륙 지역의 접점 지역에 속하고 있어 초기 국가 단계인 삼한 시대와 고대 국가 단계인 삼국 시대로 이어지는 고대 사회의 지역 집단을 이해하는 데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