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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84
한자 椰子樹
영어의미역 Palm Tree
이칭/별칭 야자수 다방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인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다방
최초 설립지 야자수 - 부산광역시 중구

[정의]

6·25 전쟁 때 문인들의 근거지였던 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던 다방.

[개설]

1·4 후퇴를 전후한 피란 시절에 부산 광복동에 있었던 밀다원(密茶苑)을 비롯하여 그 주변의 금강(金剛), 춘추(春秋), 녹원(綠園), 청구(靑丘), 스타, 르네상스, 야자수 등은 문인들의 일종의 아지트로,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허무를 달래던 한국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문인들은 시화전을 열고, 원고를 쓰고, 시장기를 때우고,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남겼다. 부산이 전쟁이라는 거센 회오리의 외곽 지대에 있었던 덕분에 많은 문학인들이 모였으며, 가장 치열하고 현실적인 작품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들 다방 중에서도 야자수밀다원, 금강, 스타 등에 비해 전후 세대에게 덜 알려진 다방이다. 유명한 다방들보다 문인들의 출입이 적었거나, 명망가들이 별로 찾지 않은 탓인 것으로 추측된다. 당대의 산증인인 시인 고은(高銀)은 야자수의 단골을 송지영(宋志英), 최호진, 조동필 등 국제 신보사의 논설위원들이었다고 했다. 금강이나 밀다원은 그야말로 ‘문인 사회’였던데 반해, 야자수는 ‘그들[송지영 등]의 기질과 부합되는 보수 반동의 작가나 젊은 작가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었다. 이들 외에 이진섭(李眞燮), 박인환(朴寅煥), 이봉래(李奉來), 김규동(金奎東) 등과 김수영(金洙暎), 고원 등도 자주 이곳에 얼굴을 보였다고 한다.

[구성]

야자수는 일본 외무성 장학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명사 박석윤의 딸 셋이 차린 ‘서울 무드가 나는 피란 다방’이었다. ‘일종의 바라크[임시로 지은 가건물] 다방’이라고도 증언한다. 어떤 이는 밀다원이나 금강 등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당시의 다방들이 딱딱한 나무 의자에 ‘시골 간이역 대합실’과도 같았다고 하므로, 야자수 역시 그 내부 구조나 인테리어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황]

다방 야자수가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언제 폐업이나 공간의 변화를 겪었는지도 알 수 없다. 문인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밀다원을 중심으로 중구 광복동 일대에 다방이 많았다고 하므로, 야자수 또한 광복동, 남포동, 창선동 일대가 아닐까 추정해 볼 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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