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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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鎭牛市場 |
영어의미역 | Busanjin Cattle Market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가연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운영된 가축 거래 시장.
[변천]
부산진 우시장은 부산부 범일정[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1908년 한국척식주식회사에 의해 개설되었다. 1914년 축산조합의 설립과 함께 축산조합으로 이관되었고, 1916년 축산조합의 해산에 의해 부산부 직영이 되었다. 1924년 부산부에서는 사용료의 반액을 부산선우중매조합(釜山鮮牛仲買組合)에 교부하고 만 10년 후 시설의 전부를 부산부에 귀속하기로 합의한 후, 부산선우중매조합에 우시장 사용 승인을 해주었다.
[구성]
부산진 우시장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소와 가축뿐만이 아니라 전 조선의 가축을 사고파는 조선의 대표적인 우시장이었다. 부산진 우시장은 일제 강점기 당시 부산부 및 조선 내지의 소 거래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즉 원래는 각 지방에서 소의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소의 이출이 용이하고 일본의 우상인(牛商人)들이 쉽게 건너와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곳이 부산진 우시장이었기 때문에 조선 각지에서 이곳으로 와서 소를 거래하였던 것이다.
1936년 3월 부산이출우검역소(釜山移出牛檢疫所)의 조사에 의하면 1935년 평균 거래가는 1두당 74엔이었으나, 1936년 1월에는 78엔 50전으로 크게 올랐으며, 2월에는 일본의 우상인들이 고가로 조선의 소를 사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산진 우시장에는 전국에서 소를 팔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36년 2월 중 소 거래량은 강원도 865두, 경기도 740두, 경상북도 584두, 황해도 482두, 경상남도 465두, 충청남도 153두, 함경남도 152두, 함경북도 140두였다. 이 가운데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는 다 합쳐도 전체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비록 부산에 있는 우시장이지만 전국적인 규모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시장의 경영은 부산선우중매조합과 부산부가 공동으로 하였다. 개시는 초기에 매월 4일, 9일[매월 6회]이었으나, 1928년 조사에서는 매일 개시한 것으로 나타난다.
[현황]
1921년과 1922년의 부산진 우시장 매매 생우(生牛)의 두수와 평균 거래 가격을 비교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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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를 통하여 해가 갈수록 소의 거래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과 그 거래 가격 또한 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부산진 우시장의 활성화는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는 일본에 대한 식민지 조선의 경제적 예속 상태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산진 우시장의 개설과 발달은 향토사 연구의 자료로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