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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면 봉림리 독립 만세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045
한자 駕洛面鳳林里獨立萬歲事件
영어의미역 Uprising for Independence Movement in Bongnim-ri, Garak-mye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인물/단체 문위동|문위호|윤상기|변동윤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4월 13일연표보기 - 발생
발생|시작 장소 음지 바위 -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

[정의]

1919년 4월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사건.

[역사적 배경]

서울에서 시작된 3·1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이 전해지고, 4월 12일 장유면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진주농림학교에 다니던 문위동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계획하였다.

[경과]

문위동, 문위동의 사촌 문위호, 윤상기(尹相基), 변동윤 등 20세 전후의 청년 수명은 4월 13일 김해군 가락면 봉림리[현재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 음지 바위 아래에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으나, 학부모들의 만류로 해산하였다.

[결과]

주변의 만류로 일본 헌병의 출동까지 이르지 않았지만, 주도자였던 문위동은 1920년 8월 29일 진주농림학교 만세 시위 주도자로 체포되었다.

[의의와 평가]

가락면 봉림리 독립 만세 사건은 청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소규모 시위였으나, 당시 김해 지역에서의 3·1 운동의 열기를 증명하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이 지역민들의 항일 의식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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